solutus

잘 모르는 분이지만 그래도 어떻게 알던,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세상을 떠났다. 한눈에 딱 봐도 꿈 많고 감각이 세련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다. 무엇이 그리 급해 명부는 그를 일찍 데려갔을까. "man errs as long as he strives." 그의 favorite quote이었다. 나의 favorite quote이기도 한. 방황과 실패를 감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부디 편히 쉬시기를.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10. 25. 03:28

객혈을 하더라도 마음속으론 그 일을 부정한다. 그리고 부러 잊는다. 그럼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객혈의 기억은 깨끗히 사라진다. 그렇게 난 내가 잊을 것들을 안다. 잠을 못 이루고 혹은 잠에서 일찍 깨어 서성이던 날, 그 날들이 예측 불가능한 미래 때문이 아니라 마치 곧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것만 같은 미래 때문이라는 걸 안 게 언제쯤부터였을까. 예측 가능한 삶이란 자신의 주관이 부여하는 축복이었지만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책무와도 같았다. 우유를 마셨다. 찢어진 기관지를 잠시나마 쓰다듬어 주는 듯한 끈끈함이 폐 위쪽을 깜싸며 내려갔다. 찢어진 싸한 아픔이, 그리고 끈끈함이, 목에서 전해졌다. 이 아픔이 다시 사라지는 날, 난 다시 잊을 것이다.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10. 24. 03:28

삶의 진정성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순수예술을 빼면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성이라는 단어 자체는 때때로 세상과 유리된 이질적 존재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실천하지 못할지언정 삶의 이상이 저 높은 곳을 향하던 때가 사라진지 오래다. 지금은 진정성이라는 것이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 자체를 의미한다. 인기영합식이든 영악하게 살든 속되게 살든 간에 어떻게든 이 치열한 세계를 살아가는 것 자체를 진정성 있는 것으로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진정성이란 남자가 여자의 호감을 사려할 때 혹은 정치인이 선거 유세를 펼 때 흔히 들을 수 있는 그런 말이 되었다. 우리는 그런 그들에게 감동받아 박수를 보낸다. 그런 게 진정성이 된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도, 때때로 이 '진정성..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10. 9. 03:30

어떤 책을 읽는 게 좋을까, 하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그들은 뭔가를 읽고 싶기는 한데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예전엔 주로 소설책(한국 단편소설)을 권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서점에 가서 버틀런드 러셀이 지은 책을 아무거나 하나 뽑아보라고. 그 책이 어떤 책이건---당신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독실한 종교인이라면 그의 책을 주의해야 하겠지)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9. 27. 15:54

어린아이 유괴에 관한 어떤 실험이 있었다. 그 실험은 한국 아이와 미국에서 교육받은 재미교포 아이들을 상황에 따라 비교 실험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아이는 낯선 사람의 요청에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심지어 그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그 사람의 차에 탑승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아이도 낮선 사람을 잘 도와주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사람의 무리한 요구, 차 안에 떨어진 걸 직접 주워달라는 등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다. 생각해볼 점은 미국에서 교육 받은 그 아이는 단순히 그 사람의 요구를 거절하여 자신을 나쁜 아이로 만드는 대신에, 그 사람을 도와줄 다른 사람, 즉 어른을 데리러 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아이는 어른을 부르러 가지 않았다. 그 실험은 그 차이를 교육 방식의 차이에서 찾았..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9. 19. 15:57

자유에 관한 논쟁이라는 것은 시시하기 마련이다. 대개 이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거나 정치적이기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유라는 개념은 어디에 들어가도 좋을 만큼 포괄적이서 어떤 관계에서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그래서 그런 권위적이고 철학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애인 관계 같은, 일상적이고 평화로우며 당연하게 보이는 관계에서도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족, 연인 관계에서 자유에 관해 이야기할 게 뭐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 당연히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했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이해심도 가지고 있다. 자유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가 이야기될 구석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9. 10. 16:42

It's already the seventh of the month. That means it's been already four days since my company's information security was evaluated by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It was really hard work---I managed to grab a couple of hours' sleep for a few days---and I almost thought that quitting time would never come. But now it's done, and four days have already passed since then. It's amazing!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7. 17. 14:07

I don't want to rush into anything readily. It all depends on my circumstances of course, but if it's worth it, I think it over. But the biggest problem of this is that things are put off over and over again, and that I end up forgetting my "TO DO" list. Yeap. I really really have left them behind. During five month in Seoul this year I've absored in my work, and it's carried over into my privat..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7. 16. 14:07

사막에 도로가 난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 사진을 본 많은 사람들이 사고 발생을 우려했다. 갑작스러운 커브길은 위험하니 지하로 길을 뚫었어야했다, 고가도로를 냈어야했다, 나무를 옮겨심어야했다, 로드킬에 대한 대비를 했어야했다, 땅이 넓은 나라의 사치다 등의 의견을 냈다. 하지만 이건 사진이 아니라 광고 이미지였다. 그 사실을 밝히자 한 사람이 말했다. "실제 사진이 아니라고? 실제 사진이 아니라 다행이네. 저기엔 지하로 길을 냈어야해." 실용가치가 예술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실용을 따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예술적으로 살기란 어떠하겠는가.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7. 4. 16:53

금고털이 파인만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내가 비밀번호를 캐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시절 집에 있던 컴퓨터 때문이었다. 내가 컴퓨터를 과도하게 하는 것을 걱정하셨던 어머니는 컴퓨터 윈도에 비밀번호를 걸어두셨는데, 그 때문에 난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컴퓨터를 할 수 없었다.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란 영어 단어나 한자를 외운 뒤 시험에 통과했을 때 뿐이었다. 난 그런 제한을 견디기 힘들었고 그래서 비밀번호를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컴퓨터 윈도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전 어머니가 부엌쪽을 바라본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연상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숟가락, 밥통, 의자, 식탁 따위의 단어를 대입해 봄으로 써 5분도 채 지..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7. 1. 16:54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고는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이렇게 스스로를 달랠 수 있다. 이건 완전히 심리적인 것이다." -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2권 9쪽 이것이야 말로 내가 걱정하는 바로 그것이다. 무언가를 반강제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없으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스스로를 달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7. 1. 16:54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시드니 샐던의 책을 자주 보던 시절, 그의 책에서 '사교계'라는 단어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사교계에 혜성 같이 등장했다거나 사교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거나. 그때 난 생각했다. 대체 사교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진출하는 것일까? 왜 사교계의 사람들은 모여서 잡담을 하는 것일까? 정치'계'나 연예'계'에 대한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는 사적인 모임이나 파티가 어떻게 해서 또 다른 '계'라는 걸 형성할 수 있을까? 난 여전히 그것의 실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어렴풋이 상상을 할 뿐인데, 분명한 것은 검소하고 조용하며 진지한 사교계는 잘 상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2012. 6. 27.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