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처럼 묘사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무의지의 대상을 글로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의미없는 수사가 넘치거나 일방적인 예찬이 되기 일쑤다. 자연은 좋고 아름답고 유익한 것이나 그것을 숭배하듯 묘사하는 걸 마냥 읽기엔 불편한 것이다. 인간의 눈에 비친 무의지와 본성으로서의 자연을 일방적으로 찬탄하다 보면 인간은 그에 대비되는 동물로 간주되거나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버린다. 그럼 김훈의 글은 어떨까. 내 스스로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 장담할 순 없으나 (나에 대해 알긴 어려우나 남을 평가하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개인적으로 담담한 걸 좋아하는 나로써는 김훈이 이 여행기에서 내보이는 감정이 나에게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자연과 옛 문화에 대한 찬사와 향수, 그리고 현대 문명과의 대비...
그러나 차분히 읽다 보니 결국 그가 그 어려운 감정의 줄타기에 성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줄이 흔들리고 그 위에 버티어 선 재주꾼의 몸과 부채가 떨어질 듯 요동쳤지만 그는 결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올려다 보니 그는 멋지게 균형을 잡은 채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의 글은 원림 내에 적절히 배치된 누정이요, 여러 집을 에돌아 당도하게 되는 하회의 집이었다. "가장 고통스런 날에 가장 영롱한 결정체들이 염전 바닥에 깔린다. 옥구 염전에서 '소금이 온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66쪽) 소금이 온다, 이 표현을 그대로 그에게 되돌려 주고 싶었다.
마침 <자전거 여행>은 봄꽃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울에도 목련이 피었고 이제 봄이 한창이니 그 기운을 느끼며 읽기에 좋다. 밀린 숙제하듯 성급히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의미를 생각하며 천천히 읽을수록 그의 글이 빛남을 알 수 있다. 꽃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들이 금세 지고 난 후의 슬픔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김훈의 아름다운 한 문장을 아래에 남겨 본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 봄은 숨어 있던 운명의 모습들을 가차없이 드러내보이고, 거기에 마음이 부대끼는 사람들은 봄빛 속에서 몸이 파리하게 마른다."(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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