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 검도와 일본 검도, 그 유사성의 문제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7. 30. 00:20

본문

대한검도회에서 복원한 조선세법이 처음 세간에 알려졌을 때 국내외 검도인들은 그 모습이 일본 검도와 닮아 있다는 데 주목하고 이를 비판했다. 특히 조선세법에서 '천, 지, 인'이라 부르는 세 가지 형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 세 가지 형은 일본 검도의 정수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거합도[각주:1]와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칼을 칼집에서 뽑는 모습과 칼집에 넣는 모습, 즉 발도와 납도가 일본의 그것과 너무 흡사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조선세법의 '천, 지, 인'을 보았을 때 일본의 거합도 혹은 그 유파인 발도도[각주:2]를 떠올리게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자세히 보면 칼을 휘두르는 법이 표절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유사하지 않으며 실상 그와 상당히 떨어져 있다. 그럼 발도와 납도의 형태가 유사하여 비난을 받는 것일까? 그런데 칼을 칼집에 넣거나 뽑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볼 때 일본과의 유사성을 두고 비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칼의 형태와 크기, 착용 위치가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칼을 뽑거나 넣는 방법이 크게 다르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간혹 암살 등을 대비해 긴급하게 칼을 뽑아야 했던 일본과 칼이 주요 병장기가 아니었던 조선은 칼을 뽑거나 넣는 행위 자체가 달라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실제 무관들의 행태와 형의 정립은 다른 문제라는 걸 간과한 판단이다. 거합도의 피털기[각주:3] 동작만 보아도 표현을 중시하는 제정형은 현실을 온전히 반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조선세법 시 띠돈을 쓰지 않는다거나 세법도의 형태가 일본도를 닮았다는 등의 문제는 그 자체로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잘못된 오해를 바로잡을 부분도 적지 않다. 예로 일부의 사례를 전체로 확장하거나(장수뿐만 아니라 병졸까지 모두 띠돈을 착용해야 올바르다고 하는 것), 반대로 전반적인 사례를 특정한 경우까지 모두 동일하게 적용하는 오류(병졸들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검을 만들어 착용할 수 있는 최고사령관까지 모두 환도를 써야 올바르다고 하는 것)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도 조선세법 시연 시 느껴지는 거합도와의 유사성의 범주에서 보자면 미미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검도'라는 용어와 스포츠가 일본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검도와 조선세법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위서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신라의 <화랑세기>를 차치하더라도[각주:4] 검도라는 단어가 일본 고유의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검술, 격검 등을 아울러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인지엔 여전히 논박의 여지가 남아 있다. 명확히 구분되어 있던 '검'과 '도'라는 단어가 훗날 혼재되어 사용되었듯이 단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의미가 변하기도 한다. 이는 일제강점기라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우리 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일본식 조어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으며 그중엔 '입구'와 '출구'처럼 일제강점기에 의미가 바뀌어버린 것들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격검 및 검술의 사용 빈도가 줄어듬과 동시에 검도라는 단어가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이 오래도록 사용했던 용어인 격검과 검술이 일본에서 들어온 검도라는 용어로 대체된 것이라 가정해 볼 수 있다.[각주:5] 오늘날 남아 있는 수많은 일본식 조어를 볼 때 이 가정을 온전히 거부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검도라는 단어가 오롯이 일본이 체계화시키고 스포츠화 시킨 무도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검도라는 단어가 우리 전통 무예, 즉 조선세법을 포괄하는 단어라 가정하더라도 문제는 남아 있다. 조선세법의 '천, 지, 인'을 보고 있으면 여전히 일본의 거합도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내외의 검도인들이 조선세법을 보며 느끼게 되는 일본 검도와의 유사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난 외부에서 보이는 칼의 기술이나 복장 등에서 심각할 정도의 유사성이 나타난다고 보지 않는다. 그 느낌은 보다 근본적인 곳에서 출발한다. 그건 바로 조선세법이 제정형을 선보이는 방식에 있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일본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대륙과 떨어져 독자적으로 발전한 탓에 같은 동북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질적인 문화를 키우게 되었다. 그 이질적 특성 중 하나는 분리주의와 고립주의다.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세계적 석학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날것을 그대로 쓰고 맛을 섞지 않는 일본의 요리에서, 소묘와 색체가 따로 노는 일본의 판화에서, 때로는 여러 다른 파가 같은 절에서 기거하는 중국 불교와 그렇지 않은 일본 불교에서 그런 특성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칼을 분리할 수 있도록 제작하는 일본의 칼과 그렇지 않은 한국과 중국의 칼에서도 그런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리주의와 고립주의는 단순성을 지향하는 일본 특유의 정신과 이어진다.

 

단순성의 지향은 일본의 무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무도는 일본에서 '카타'[각주:6]라 부르는 체계적인 동작을 선보일 때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짧고 간결한 동작을 반복적으로 시연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고유 무술인 검도나 거합도, 유도, 아이키도 모두 동일한데, 카타를 선보일 때 다양한 기술을 한 자리에서 연속적으로 시연하는 것뿐 아니라 한두 가지의 기술을 간결하게 시연한 뒤 제자리로 돌아가는 방식을 카타의 하나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화려함과 변화를 추구하는 중국의 문화와 그에 속한 무술, 그리고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방식이다. 중국의 무술은 거의 대부분 투로를 상당한 연속 동작으로 규정한다. 우리나라 고유 무술인 택견과 근래의 태권도를 보아도 품새가 긴 연속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은 가라테도 하나의 형이 다양한 기술의 연속 동작으로 되어 있어 일본 고유 무술과 구별된다.

 

그런데 대한검도는 조선세법 '천, 지, 인'의 제정형을 단선적인 동작으로 정했다. 칼을 뽑고, 앞에 있는 가상의 적을 향해 칼을 단 몇 차례 휘두르거나 찌르고, 칼을 칼집에 넣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동작을 반복한다.

 

우선 이 동작에서 거합도의 방식, 즉 암살이나 기습에 대비한 빠른 발도술이나 주변을 경계하는 납도 방식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를 큰 문제 삼기는 어렵다. 조선세법 '천, 지, 인'에 칼집에서 빠르게 칼을 뽑으라거나 사주를 경계하며 납도하라는 가르침이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조선세법의 발도는 순간적으로 칼을 빠르게 빼내어 기술을 구사하는 발도술이라기보다는 그저 칼을 넣고 빼는 행위 그 자체에 가깝다. 이 측면에선 거합도보다는 차라리 발도도와 유사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결국 국내외 검도인들이 복원된 조선세법에서 느끼게 되는 이질성은 칼의 형태나 복장, 도법, 납도와 발도의 형태 때문이라기보단 각각의 기술을 분리하여 단순하고 간결한 하나의 형으로 정립해 놓은 그 형태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방식에서 우리는 조선이 아니라 일본의 특수성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대한검도회에서 조선세법의 진수를 '천, 지, 인'에 두도록 방침을 정한다면 앞으로도 국내외 검도인들의 비판을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조선세법의 복원이 아직 진행 중이며, 복원의 방향이 단선적 동작보다는 연속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천, 지, 인' 이후에 나온 '초습'의 형에서 앞으로 나올 복원의 형태를 예견해 볼 수 있다. 조선세법 시연 시에도 초장기처럼 '천, 지, 인'을 먼저 선보이는 것이 아니라 연속 동작으로 된 '격법'과 '자법' 등을 먼저 선보이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이런 점에서 조선세법 복원이 앞으로 어떻게 추진될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연속된 형에선 일본의 그림자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2019년 조선세법 시연 영상. 연속 동작인 격법으로 시연을 시작하고 있다.

 

이를 볼 때 대한검도회에서 조선세법의 보급 초기에 단선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는 '천, 지, 인'을 우선적으로 강연했던 것은 조선세법이 아직 복원 중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완성된 형을 선보이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니 간결한 형태의 기술을 뽑아 몇 가지 형으로 만들어 선보였는데 그 형태가 일본의 거합도를 떠오르게 하는 데가 있어 상당한 반발을 일으키게 된 것 같다. 대한검도회의 조선세법이 일본의 검도, 혹은 거합도를 표절했다는 식의 비난 혹은 일본 검도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다만 차후의 복원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도 있다. 

 

언젠가 조선세법의 복원이 완성되면 발도와 납도를 주로 하는 단선적인 '천, 지, 인'보다는 다양성과 변화를 살리는 연속 동작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에도 더 어울린다고 본다. 그러한 때가 되면 일본의 검도형과 닮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대한검도회의 조선세법 복원도 상당한 명분과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 居合道. 이아이도라고도 한다. 이하 거합도로 표기 [본문으로]
  2. 나카무라류 팔방베기 발도도[中村流八方切り抜刀道]. 이하 발도도로 표기 [본문으로]
  3. 일본어로 치부리[血振るい]라 한다. [본문으로]
  4. 해당 필사본에 '검도'라는 단어가 몇 차례 등장하고 있다. [본문으로]
  5. 곽낙현, 김영학 <「매일신보」를 통해서 본 검도기사 연구> (대한무도학회 pp.27~41, 2010. 9) [본문으로]
  6. 기술을 특정 원리에 따라 형식화한 것으로, 각 국가의 무도별로 품새, 카타, 본, 투로, 교 등으로 부르고 있다. 형[形 혹은 型]으로 통일하여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