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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답변 -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르는 곳은 어디인가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8. 4.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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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르는 곳은 어디일까? 섬인 독도를 제외하더라도 사람들의 말이 제각각인 걸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간절곶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호미곶이라고 하며 또 누군가는 설악산이라고 한다. 왜 이런 혼란이 있을까? 

 

이유는 질문 자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이 명확하지 않으니 질문의 해석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게 된다. 지구는 구체이며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고 또 평면이 아니라 지형에 고저차가 있다. 그래서 태양이 떠오르는 시각, 일출시간은 계절에 따라, 관찰자의 고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그 어느 곳도 '일출이 가장 빠른 곳'이라는 타이틀을 혼자서 독식하지는 못한다. 가령 간절곶이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르는 곳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특정 조건을 만족할 때에만 그렇다. 그렇기에 각 지자체에서 서로 해가 가장 빨리 뜨는 곳이라 홍보하더라도 그를 두고 명확하게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우리가 일출을 보러 가는 때가 거의 대부분 그 해의 마지막 날이거나 새해 첫날이다 보니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르는 곳'이라는 모호한 명제에서 몇 가지 암묵적 함의를 유추해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때가 '새해 첫날'이라는 것이다. 일출은 새해 첫날에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관찰 위치가 내륙 해안가라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새해 일출을 보러 힘겹게 산을 올라가거나 멀리 섬으로 떠나기보다는 수월하게 갈 수 있는 내륙 해안가를 찾는다.

 

이런 암묵적 함의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르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내륙 해안가 중 새해 첫날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어디인가?"

 

이 질문의 정답은 경상남도 울주군에 위치한 간절곶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모호하게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 어디야?" 하고 묻는다면 "그건 간절곶이야"라고 대답해도 큰 문제는 없다. 다만 답변자가 세상의 이치를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에 길들여져 있거나 혹은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면, 쉽게 말해 나처럼 공대생이거나 이과생이라면 질문을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만 '이과생들은 생각이 특이해'라거나 '공대생들은 말하는 게 이상해'라는 핀잔을 들을 가능성이 있으니 질문자의 성향에 따라 적절히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공대생의 답변:

"독도나 울릉도는 빼는 거지? 특정한 시기를 한정해서 묻는 거야? 고도는? 왜 묻느냐고? 동짓날 해안가라면 간절곶이 가장 빠른데, 만약 고도까지 고려하면 울산의 신불산이 제일 빠르다고 할 수 있어서. 지구는 구체라서 높은 데 올라가면 해를 더 빨리 볼 수 있거든. 만약 겨울철이 아니라 가령 여름의 하지라면 간절곶보다 호미곶에서 해가 더 빨리 떠올라. 왜냐고? 지구는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하지에는 태양이 북반구를 비추지만 동지에는 남반구를 비추거든. 그래서 하지엔 위도가 높을수록 해가 빨리 뜨고, 동지엔 위도가 낮을수록 해가 빨리 떠. 그래서 여름철엔 남쪽에 있는 호미곶보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진리 해안에서 해가 더 빨리 떠오르지. 하짓날로 한정하면 간절곶보다 호미곶이 2분 정도 더 빨리 뜨고, 호미곶보다도 진리가 3분 정도 더 빨리 떠. 그런데 아까 말했듯 고도의 영향이 또 무척 크거든. 그래서 여름이라고 해도 꼭 위도가 높거나 동쪽으로 갈수록 해가 빨리 뜨지는 않아. 그러니까 하짓날엔 설악산 정상에서 해가 가장 빨리 떠올라. 아까 말한 진리보다도 5분이나 더 빨리 떠. 그러니까 설악산 정상에 서 있으면 흔히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른다고 말하는 간절곶보다도 10분이나 빨리 태양을 볼 수 있어. 설악산에서 해가 가장 빨리 떠오르냐고?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니라는 거지. 새해 첫날은 간절곶이야. 이것도 내륙 바닷가로 한정할 때 그렇다는 거고, 고도까지 따지면 간절곶보다도 울산 신불산이 더 빠르지. 간절곶보다 3분이나 더 빨리 해가 뜬다, 이 말씀이야. 왜 높은 곳에서 해가 더 빨리 떠오르냐, 그건 지구가 구체라서 그렇다는 거지. 그러니까 같은 장소에 서 있더라도 농구선수는 애들보다 좀 더 해를 빨리 볼 수 있어. 하하. 그런데 영남 알프스라고 알아? 신불산이 영남의 알프스라고 유명하거든. 마침 같이 갈 사람이 필요한데...... 혹시 시간 있니? 응? 왜 그래? 듣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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