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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의 찌름 대 머리치기, 기분을 유지한다는 것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1. 1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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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사범과의 마지막 연습 시간이었다. 여러 번의 공세와 물러남 끝에 내가 머리치기를 시도했다. 난 내 머리치기가 성공했다는 걸 느꼈다. 기세 좋게 '머리!'를 외치는데, 그 순간 채 사범의 죽도가 내 목을 찌르며 들어왔다. 아마도 내가 머리치기를 시도했을 때 채 사범은 찌름을 시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채 사범의 찌름은 호면의 목 보호대가 아니라 내 목을 찌르고 들어왔다. 여전히 '머리!'를 외치고 있던 내 목은 채 사범의 죽도 끝에 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하게도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크게 외치고 있었기에 목의 근육이 팽팽히 긴장한 상태였고, 그 덕분에ㅡ심지어ㅡ상대방의 죽도를 목으로 튕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수는 없었다. 마치 차력을 하듯 목으로 죽도를 튕겨낼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시 버티는 듯하다가 그 이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순간적으로 얼굴과 상체를 뒤로 젖혔다. 


상체를 뒤로 기울이는 바람에 머리를 쳤음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그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치기를 포기하는 대신, 머리를 친 내 죽도를 그대로 머리 뒤로 당겨 퇴격머리로 전환시켰다. 그 와중에도 난 '머리!'라는 외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난 뒤로 물러서며 존심을 지켰다.


난 이 과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만일 이것이 시합이었다면 심판이 내 머리를 들어주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기뻐하던 그 순간, 난 놀랍게도 다카나베 선수와 히가시나가 선수의 결승 시합을 떠올렸다.


상대방의 찌름 공세에 쉽사리 위축이 되곤 했던 나는, 제59회 전일본검도선수권대회에서 히가시나가 선수가 보여주었던 기세에 크게 감탄했었다. 당시 히가시나가 선수는 다카나베 선수에게 찌름 공격을 당했었는데, 실은 그 찌름은 호면의 목 보호대가 아닌 목을 찌른 잘못된 공격이었다. 히가시나가 선수는 상대방의 죽도가 휠 정도로 강한 찌름을 자신의 목으로 받아내야 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치기 자세를 끝까지 유지했다. 머리치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공격인데, 몸을 앞으로 던지는 도중에 찌름을 당했으니 고통이 상당할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머리치기를 퇴격머리 자세로 유지하는 정신력을 발휘했다. 난 그 부분에 감탄했고 그 뒤로 '히가시나가'라는 이름을 잊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찌름에 위축되지 않고, 설령 잘못 찔렸더라도 자신있게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건 요원한 일이었다. 난 여전히, 지금도 상대방의 찌름 공세에 흔들린다. 하지만 오늘, 비록 단 한 번에 불과했지만 위축되지 않은 채 버텨냈다는 사실에 스스로 기뻐했다. 심지어 히가시나가 선수와 아주 유사한 모습으로 말이다.


채 사범은 얼른 다가와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괜찮았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즐거웠다. '기분'을 잃지 않는다는 것, 끝까지 '기분'을 유지한다는 것, 오늘 처음으로 그것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본 것 같다.


<찌름 대 머리치기. 다카나베 선수와 히가시나가 선수의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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