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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를 할 때의 마음가짐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1. 20.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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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포츠에는 기본 자세라는 게 있고 처음에 배울 땐 누구나 그것을 배운다. 하지만 종국에는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데, 만일 그 스타일이 그 선수의 경기력, 예를 들어 성적이라거나 공의 속도 등에 도움을 준다면 그 선수 특유의 것으로 인정을 해주는 편이다. 

 

자세를 중시하는 스포츠 중 하나인 테니스를 보자. 테니스 선수가 서브를 넣을 때의 동작은 대개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선수는 두 발을 모은 채 뛰고 어떤 선수는 양발을 벌린 채 뛴다. 공을 위로 던질 때 어떤 선수는 손을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가 위로 들어올리고, 어떤 선수는 허리춤에서 곧장 들어올린다. 하지만 그 차이가 잘못된 자세라는 지적으로 쉽사리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그런 특유의 폼으로 나름의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많은 선수들이 양발을 모아서 칠 것인지, 아니면 살짝 벌려서 친 것인지 등등에 정답이 없음을 증명해 왔다. 예전 방식이 구식으로 취급되어 새로운 자세가 나타났다가, 다시 예전의 전통적인 자세가 낫다며 회귀하기도 한다.

 

야구 같은 '예절'과 '자세'의 스포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투수와 타자들은 이따금 자세 교정을 받기도 하는데 그것은 대개 부상이 발생했거나, 제구가 잘 되지 않거나, 구속이 나오지 않는 등의 이유가 있을 때이지, 타자들을 상대로 잘 던지고 있는 투수의 폼을 교정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투수와 타자 들의 폼은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보면 역시 제각각이며, 그런 차이로 인해 비난을 듣는 일은 드물다.

 

그에 반해 검도는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자세가 있다. 검도를 업으로 삼는 선수들은 선수들 특유의 자세가 있는데, 아무리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정상급의 선수라 할지라도 자세가 이상적이지 않으면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국내외의 정상급 프로 검도 선수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회인들도 우승 직후에 '점수 따먹기식 검도'를 했다는 불명예에 시달리곤 한다. 여기에 검도라는 스포츠의 특이성이 있다. 검도는 펜싱과도 다르고 태권도와도 다르며 가라테와도 다르다. 가라테는 검도처럼 '형'을 매우 중시하는 일본 무술인데도 시합 대련을 할 때는 무도적인 측면을 상당히 배제했다.

 

 

2.

검도는 자세 자체가 득점의 가부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타격 부위를 죽도로 제대로 가격했어도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점수로 인정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올바름'이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이상적인 자세를 10점이라고 놓았을 때 일반적으로 7점 이상이면 득점으로 인정해 주는 편인데, 그 7점이라는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서 엄격한 심판은 득점 기준을 8점에 두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심판은 자세가 6점만 되어도 득점으로 인정을 해 준다. 물론 그 7점인 자세가 어떠한 것이라고 명확히 정해져 있지도 않다.

 

그래서 선수들이 판정에 불만을 갖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은 고단자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판을 볼 땐 엄격했던 사람도 자신이 선수가 되어 뛸 때는 심판의 득점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런 불만은 심심찮게 심판이 심판을 볼 줄 모른다는 야유로 이어진다. 적절한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러한 판단들에서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면 그건 문제이다. 어떤 심판은 선수가 허리를 쳤으나 몸이 조금만 나갔다는 이유로 득점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반면 어떤 선수의 허리치기는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점수로 인정해 준다. 같은 심판이 그런 식의 차이를 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판정에 대한 온도차와 비일관성은 사회인들 사이에서 훨씬 크게 나타난다. 각자가 생각하는 득점의 기준이 다를 뿐더러, 사회인은 자신이 어떤 자세로 시합을 하고 있는지를 본인 스스로 잘 알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시합을 하는 개개의 사회인 선수들을 운동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상적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그 이상향을 '7점'이라도 충족해 내는 사회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자신을 촬영한 영상을 본 후에야 부족함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그러하니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타격을 제3자는 부족하다고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아쉽게도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무작정 '보는 눈'이 없음을 탓하고 말 때가 많다. 

 

 

3.

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타격을 했는데 심판이 기를 안 들어줬다고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또 맞지 않았는데 심판이 상대방의 점수로 인정해줬다며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반면 내가 이득을 보았을 때는 입을 다물었다. 판정을 일관성 있게 본다는 것 역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검도 입문자나 초심자가 판정에 불만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고단자의 그런 태도이다. 고단자의 일관성 없는 태도나 심판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는 그를 보고 배우는 모든 수련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고단자가 될수록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책임감을 갖고 원망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자기보다 하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몇 대 맞았다는 이유로 분풀이하듯 연속 공격을 하거나 언성을 높이면서 지적을 해서는 안 된다. 가르쳐줬는데 반신반의한다는 이유로 화를 내서도 안 된다. 그럴수록 제대로 된 실력으로, 바른 자세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고단자의 위치가 어려운 것이다. 

 

반면 입문자나 초심자, 혹은 고단자 역시도 상대방의 판단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누군가 지적을 한다면 자신이 아직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자. 명백히 잘못된 판정이라 생각돼도 먼저 이해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인인 검도를 배우는 목적 중 하나는 승부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이다. 검도에서 강조하는 마음가짐들이란 거의 모두 그런 것인데 이는 검도가 선불교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가르치며 그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설법하지만, 우리는 정규 시합도 아닌 도장에서의 작은 대련에서조차 쉽게 승부에 집착하곤 한다.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량한 태도를 보이거나, 상대 선수와 계속 타격 부위를 외치며 대립하는 모습처럼 볼썽사나운 것도 없다. 고단자들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일반 교인이 비위를 저지르는 것과 큰스님이 비위를 저지르는 것에는 파급력에 차이가 있다. 큰스님의 그릇된 행실은 종교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검도 역시 다르지 않다.

 

검도는 무도의 측면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무도가 형으로 이상화해 놓은 외적 자세를 따라하는 데에만 치우친다면 실전성을 넘어 검도의 본질 자체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고단자로 가는 길에 여전히 '도'가 걸려 있다면 승단을 준비할 때에도, 검도를 수련할 때도,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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