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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 새로운 시도, 옛날의 방식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1. 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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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잡채를 몇 번 만들어 본 일이 있기에 스스럼없이 잡채를 만들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붙어 새로운 조리법과 도구를 찾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운 조리법 중 '당면이 불지 않게 조리하는 법'이란 내용이 눈에 띄였다. 지금까진 삶은 당면을 찬물에 한 번 씻은 후 프라이팬에 볶거나 바로 야채와 버무렸는데, '당면이 불지 않게 조리하는 법'은 당면을 찬물에 씻지 말고 뜨거운 채로 놔두라고 했다. 당면을 뜨거운 상태로 놔두면 수분 증발이 빨라서 서로 눌어붙지 않고 불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따라해 보았는데 다음날에도 당면이 불지 않은 상태였다. 좋은 방법이었다. 다만 당면이 너무 뜨거워서 야채와 소스를 버무릴 때 애를 좀 먹었다.


아내가 시금치를 무쳐 두어서 그나마 편하게 잡채를 만들었다. 그런데 양념이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잡채의 간이 왜 이리 맞지 않나 고민했었는데 양념된 시금치무침이라 넘겨짚은 것이 컸다.


야채를 썰 때 도루코에서 나온 대중적인 주방칼을 사용했다.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식칼인데, 날이 빨리 무뎌지는 강재인 데다가 날도 갈아두지 않아 야채가 잘 썰리지 않았다. 이런 칼로는 빠르게 채썰기가 쉽지 않다. 이런 종류의 칼은 칼갈이가 쉽고 막 쓰기에도 좋으므로 자주 날을 갈아줘야 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만 있다.


조리 후반부에 간을 맞출 땐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퇴근 후 돌아온 아내는 어깨 너머로 배운 장모님의 잡채 조리법을 간간이 일러주었다. 



2.

잡채는 제법 오래된 요리라 조선시대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1670년(현종 11년)경에 정부인 안동 장씨라 불리던 장계향이 남긴 <음식디미방>[각주:1]에 수록되어 있는 음식 조리법 중 하나가 잡채다. 이곳에 수록되어 있는 잡채 조리법은 <음식디미방>에 소개되어 있는 조리법들이 현대와 조금씩 다른 것처럼 지금과는 차이가 있다. 여러 가지 채소를 볶는 것은 비슷하지만 고기는 꿩고기를 썼고 육수로 꿩고기 육수를 썼다. 또한 된장으로 간하고 밀가루를 걸죽하게 풀어 만든 즙을 끼얹어 양념한다는 점도 다르다. 그 당시엔 지금처럼 당면을 넣지 않았고 간장으로 양념하지도 않았다.


잡채는 대중적인 음식이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여러 조리서에 등장하는데 그마다 조리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음식보>[각주:2]를 보면 마지막으로 참깨를 갈아 만든 마지즙[麻脂汁]을 치라고 되어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역시 당면이다. 지금은 요리하는 집마다 각각의 야채는 달라도 당면은 꼭 넣을 만큼 당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조선시대 잡채 조리법엔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당면은 1920년대 이후부터 잡채의 재료가 되었다"중국 음식에서 쓰던 전분으로 만든 펀타오에서 영향을 받아 1920년대 당면 공장이 세워졌는데, 이때부터 당면 넣은 잡채가 유행"[각주:3]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표지에 신선로와 여러 야채들을 그려 넣은 뒤 색을 입힌, 국내 최초의 채색 표지 조리서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년)은 여전히 잡채에 당면을 넣지 않았다. 오히려 잡채에 당면을 넣던 당대의 조리법을 비판하였으니, "잡채에 당면을 데쳐 넣는 것은 좋지 못하고 겨자나 초장을 곁들여 먹으라"[각주:4]고 제안했다.



3.

잡채를 만들 때 사용한 재료는 다음과 같다. 시금치 한 단, 양파 2/3개, 느타리버섯 100g, 피망 1개, 소고기(210g), 당면(350g), 다진마늘(반 숟갈), 소금(반 숟갈), 설탕(두 숟갈), 간장(반컵), 참기름(두 숟갈). 소스는 그때그때 맛을 보고 넣었기에 추정치를 표기했다.





  1. 총 146가지의 음식 조리법이 수록되어 있는 책으로, <음식디미방>은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란 뜻이다. [본문으로]
  2. 순 한글로 쓰인 조리서이다. 집필 시기는 1700년 전후로 추정된다. <음식디미방>처럼 양반가의 여성이 남긴 책으로, 직접 요리 작업에 참여한 인물(여성)이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본문으로]
  3. 한복려, 한복진, 이소영 지음 <음식고전> (현암사 2017), 519쪽 [본문으로]
  4. 같은 책, 208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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