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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오카 제작소의 주방용 칼, "다마하가네 교토" 다마스커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12. 3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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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소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고 있는 주방칼은 일본 가타오카 제작소에서 만든 "다마하가네 교토" 시리즈 중 길이가 180cm인 '규토[牛刀]'[각주:1]이다. 한참 사용했음에도 날을 갈아두지 않아 날이 무뎌진 상태이다.


이 주방용 칼은 지난 봄에 일본에서 구매한 것이다. 온갖 주방용 칼이 즐비한 도쿄 가파바시 거리의 혼돈 속에서 골라온 것은 칼 옆면에 현란한 무늬가 그려져 있는 길이 180cm의 다소 작은 주방용 칼이었다. 일본에서 '규토'라 부르는 종류의 칼이었지만 칼 판매상은 규토 대신 셰프나이프(chef's knife)라는 용어를 썼다. 내가 외국인인 것을 알고는 셰프나이프라는 서양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 칼을 사온 뒤로 난 주방에서 거의 매번 이 칼만 사용하고 있다. 열심히 사용하다 보니 어느새 칼 옆면에는 흠집이 났고 날도 많이 무뎌졌다. '다마스커스' 혹은 '패턴 웰딩'이라고 부르는 칼 옆면의 현란한 무늬도 광택이 조금 사라졌다. 난 다소 아쉬운 마음을 담아 그새 광이 많이 죽어버렸다며 아내에게 푸념했다.


"다마하가네 교토" 주방용 칼. 패턴 웰딩 무늬가 보인다. 서울, 2018.12.30.


2.

영국의 칼 수집가이자 유명 셰프인 헨리 해리스는 칼날에 난 흠집을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칼날에 첫 번째 흠집이 생기는 순간을 기다릴 정도입니다. (...) 어쨌든 생겨난 자국들이고 내 칼의 일부지요. (...) 나는 칼을 사용하려고 샀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칼을 소유하는 진정한 기쁨은 썰고 저미고 깎는 데 있는 겁니다."[각주:2]


도구에 난 상처를 어떤 이들은 아쉬워하고 또 어떤 이들은 기쁘게 생각한다. 그 상처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이들의 공통점은 도구에 가해지는 세월의 흔적을 미의 일환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사용한 탓에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닳아서 모양이 조금 변해버린 도구는 설령 공장의 같은 라인에서 생산된 제품이라 할지라도 이제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된다. 그 유일성이 그 오래된 칼에 독자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일본의 다도 문화에서 자주 발현되곤 하는 '와비[わび]'는 이처럼 칼의 문화에도 닿아 있었다. 심지어 그 칼을 사용하는 서양인에게도. 


내가 날이 무뎌졌음에도 칼을 갈지 않고 그대로 계속 놔두었던 이유는 칼을 갈다가 날에 상처가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럼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닐까. 무엇 때문에 이 칼을 구매했는지 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3.

이 칼을 간단히 언급했던 지난번의 글에서 난 이 칼이 '다마하가네[각주:3]'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칼 표면에 'TAMAHAGANE[각주:4]'라는 큼지막한 표기가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그 글자 하나만으로 그런 가정을 한 것은 무리였다.


우선 칼날 부위에 오로지 다마하가네를 쓴 것인지, 아니면 다마하가네에 몰리브덴과 바나듐을 섞어 쓴 것인지 확실치 않다. 제조사는 칼날 부위가 Mo-V 합금이라 설명할 뿐 그 밖의 자세한 사항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실 칼날에 다마하가네를 사용한 것인지조차 확실치 않다. 정말 다마하가네를 사용했다면ㅡ다마하가네의 품질이 현대의 강철보다 떨어진다 할지라도ㅡ홍보용 문구라도 넣어야 했다. 


어쩌면 가타오카 제작소는 단순히 이 주방칼 시리즈의 이름으로 '다마하가네'를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품명을 언급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마하가네를 일절 언급하고 있질 않으니 이쪽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복잡한 가정을 하지 말자는 '오컴의 면도날' 이론에 따르면 다마하가네는 단순한 상표명으로 간주하는 게 좋을 듯하다.[각주:5] 


이 규토의 중심 강재는 VG-5 스테인리스 강으로, 이 스테인리스 강은 몰리브덴과 바나듐을 적절히 섞은 고탄소강이다.  제작소에 따르면 칼날의 로크웰 경도는 61이다. 이 칼의 가장 큰 외적 특징은 당연히ㅡ흔히 다마스커스 무늬, 또는 다마스커스 강이라고 표현하는ㅡ패턴 웰딩[각주:6]이다.


"다마하가네 교토" 다마스커스 주방용 칼. 손잡이 부위. 칼날과 볼스터가 이어져 있고 탱(tang)이 손잡이 끝까지 나 있다. 서울, 2018.12.30.


4.  

아내는 이 칼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칼끝이 뾰족해서 무섭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 일반 가정집에서 규토보다 산토쿠[각주:7]를 많이 사용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 산토쿠는 칼끝이 뾰족하지 않다는 걸 들 수 있다. 대형 마트에서 파는 칼들은 대개 칼끝이 앵무새의 부리처럼 밑으로 구부러져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인다. 


사실 평범한 가정집이라면 주방에서 칼끝의 뾰족한 부위를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주부들은 대개 야채나 고기를 써는 데 칼을 사용하기에 칼끝을 사용할 일이 없다. 육류도 마찬가지다. 이미 정육점에서 상당히 발라놓은 고기만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일반 가정집에서는 뼈가 붙어 있는 육류를 거의 다루지 않기에 칼끝으로 복잡한 관절을 뚫거나 도려낼 일이 없다. 작은 부위를 파내야 할 때는 뾰족한 칼끝이 도움이 되지만 보통 그런 일에는 감자칼 같은 전문화된, 보다 안전한 도구를 사용한다. 나도 아직 규토의 칼끝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생선도 손질되어 있는 것만 구매하다 보니 칼끝을 쓸 일이 없다. 


내가 칼끝이 뾰족한 규토를 고른 건 실용이 아니라 외형 때문이었다. 하나 사는 거, 지금껏 써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걸 선택하고 싶었다. 


손잡이가 나무로 되어 있던 것도 선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상점엔 날과 손잡이가 하나로 이어진 일체형 칼도 많았는데, 금속의 차가움이 손잡이까지 연결되는 것 같아 선택에서 제외했다. 다만 칼날과 볼스터[각주:8]가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물기를 피할 수 없는 작업을 하기에 볼스터와 날이 일체형이면 아무래도 보다 튼튼해 보인다.




  1. 서양의 셰프 나이프와 유사한 형태의 일본 주방칼을 가리킨다. 규토(牛刀)는 그 뜻처럼 원래 고기를 썰 때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야채를 썰 때도 사용하는 등 다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2. 팀 헤이워드 저, 김수연 역 <칼, 나이프 KNIFE> (그린쿡 2017), 87쪽 [본문으로]
  3. 철광석이 아니라 사철을 이용해 만든 강철로, 이 강철은 주로 일본도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할 때 사용된다.우리나라에선 일본 한자를 우리식대로 발음하여 '옥강[玉鋼]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4. 우리나라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어두에 오는 일본어 'タ행'은 'ㄷ'으로 표기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에서 사용하는 영문 표기는 'TAMAHAGANE'이지만 우리나라에선 한글로 표기 시에 "다마하가네'라 써야 한다. [본문으로]
  5. 미국의 '호초 나이프'사의 설명에 따르면, 가타오카 제작소는 '다마하가네'를 브랜드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https://www.hocho-knife.com/tamahagane/ [본문으로]
  6. 현대의 다마스커스 강은 여러 겹으로 쌓아올린 강합금을 높은 열과 압력으로 눌러 얇은 판 구조로 만든 것이다. 이 과정을 패턴 웰딩(Pattern Welding)이라 부른다. 강한 압력에 눌려 하나의 얇은 판이 된 강합금들은 단조 과정에서 다양한 무늬를 띠게 되는데, 이 무늬는 고대~중세 시대에 유럽에서 명칼로 이름을 떨쳤던 아랍의 '다마스커스' 무늬와 비슷하다. 그래서 현대의 패턴 웰딩 기법으로 만든 칼을 '다마스커스 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무늬만 유사할 뿐, 우츠(Wootz)를 이용한 다마스커스 제조 공정과 패턴 웰딩을 이용한 현대의 제조법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본문으로]
  7. 칼끝이 부드러운 ㄱ자 형태로 꺾여 있는 주방용 칼. 아시아에서 많이 사용하여 '아시아형 식도'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8. 일본의 전통적인 주방칼들은 볼스터 대신 페룰(ferrule)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페룰을 구치와[口輪 ], 혹은 츠노마키[角巻]라 부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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