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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원두 선택의 패러다임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1. 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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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트코에서 구매한 폴 바셋 커피 원두로 내려 만든 카페라테. 서울, 2019. 1. 1.


1.

코스트코에 가면 가끔씩 커피 원두를 사온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커피 원두들은 품질이 아주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나처럼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사람들에겐 좋은 대안책이 되어 준다.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꽤 괜찮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단 로스팅(Roasting), 즉 볶은 지 오래된 것은 구입하지 않는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모든 커피 원두에는 볶은 일자 대신 유통기한 또는 제조일자가 적혀 있다. 원두 포장지에 적혀 있는 유통기한은 대개 1년이므로 그 기간으로 로스팅 일자를 가늠하여 약 한 달이 지난 것은 구입하지 않는 편이다. 제조일로 한 달이 지난 원두를 먹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간 코스트코에서 여러 원두를 구매하여 에스프레소를 내려 보았을 때 한 달이 지난 것에선 만족스러운 품질의 에스프레소를 얻을 수가 없었다.


코스트코에서 판매 중인 커피 원두 중에 드물게 유통기한이 1년이 아니라 2년인 제품도 있다. 사실 유통기한만으로 제조일자를 추정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유통기한을 2년으로 잡은 커피 원두를 1년 뒤에 처음 본 소비자는 어쩌면 그 커피 원두를 갓 볶은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일반적인 커피 원두의 유통기한은 1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코스트코에서 폴 바셋의 커피 원두를 구매한 건 제조일자를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스트코의 많은 커피 원두 중 제조일자를 표기해 둔 것은 폴 바셋뿐이었다. 게다가 제조일이 작년 12월이라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갓 볶은 소량의 원두를 매번 구매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제조일자가 몇 달씩 지난 원두를 선택할 수도 없다면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2.

결국 비교의 문제이다. 다만 코스트코에서 판매 중인 일부의 커피 원두 중엔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추출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있었으니 피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제조한 지 오래되지 않은 것을 구매했는데도 그랬다. 여기서 '제대로' 추출할 수 없었다는 말은 원두를 아주 미세하게 갈아낸 뒤 포터필터에 아주 듬뿍 담았음에도 추출 시의 기계 압력이 8바(bar)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난 결국 그 커피 원두를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다. 쓴맛도 너무 강해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것은 개인의 취향에 속한다. 추출 시 압력이 9바까지 올라가야 한다거나 원두를 볶을 땐 균일하게 가열해야 한다거나 분쇄도는 일정해야 한다거나 맛이 어때야 한다는 것도ㅡ어쩌면ㅡ그렇게 볼 수 있다. 난 쓴맛이 너무 강해서 버렸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쓴맛을 좋아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소수에 속할 확률이 높지만 어쨌거나 세상의 일부는 99% 카카오의 쓰디쓴 맛에 열광하기도 한다. 커피 산지로 유명한 에티오피아의 이르가체페[각주:1] 사람들은 커피 생두를 시커멓게 탈 때까지 프라이팬에 구운 후 절구통에 넣어 방망이로 마구 찧고는 물을 부어 마신다. 그럼에도 커피 맛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모두 손수 작업해야 하니까 과정은 복잡하지만 기계로 만든 커피보다는 맛이 훨씬 좋아요." 커피의 맛을 정교함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은 깜짝 놀랄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어쩌면 집에서 막 볶은 '로스팅'의 힘일까? 하지만 그 로스팅에선 균일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이것은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택하는 비교와 취향의 문제가 된다. 나 역시 그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폴 바셋 커피 원두로 커피를 내렸다. 막 뜯은 폴 바셋 커피 원두를 유리 보관함에 넣은 뒤 에스프레소를 내렸다. 그리고 우유를 데운 뒤 원두에 부어 카페라테를 만들었다. 신맛이 풍부했다. 사용한 커피 원두는 코스트코에서 구매한 '폴 바셋 시그니처 블렌드 - 풀 포텐셜'이다.




  1. 시중에선 흔히 '예가체프'로 쓰고 있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에서 '예가체프'가 아닌 '이르가체페'가 표기법에 맞다며 권고하고 있으므로 이를 따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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