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풍 콩레이가 완전히 소멸하고 난 다음 날, 우리는 교외의 한적한 곳에 있는 친척 댁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친척 댁은 지상에 빛이 드문 곳이었으니 전날 비까지 내려 공기가 맑은 그곳이라면 밤하늘에 별이 많이 보일 것 같았다. 그때 문득 달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망원경으로 달을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야 여러 번 보았지만 크레이터까지 보이는 커다란 달을 아이는 아직 본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던 망원경을 꺼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달 주기를 생각해 보니 그날은 그믐달이 뜨는 시기라 밤에 달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망원경을 가지고 나갈 생각을 하고 나기 그 마음이 쉽게 접히지 않았다. 다른 행성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알아보니 그날 밤에 목성과 토성이 모두 떠 있었다. 난 얼른 망원경을 차에 실었다.
2.
저녁 7시경이면 목성은 이미 서쪽으로 상당히 기운 상태가 되니 난 서둘러 저녁을 먹은 뒤 마당으로 나갔다. 망원경은 오후에 이미 조립을 해 놓은 상태였다. 경통에 달린 보조 망원경으로 목성을 맞춘 뒤 주 망원경의 접안렌즈를 기대에 부푼 채 들여다 보았는데, 아뿔싸, 목성이 보이지 않았다. 보조 망원경과 주 망원경의 정렬이 일치하지 않아 보이는 곳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 망원경으로 행성을 보기란 매우 어려워질 터였다. 난 당시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고 있던 화성을 기준 별로 잡은 뒤 보조 망원경과 주 망원경의 시야를 일치시키기 위해, 즉 '파인더 정렬'을 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별 하나에 의지한 채 파인더 정렬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처음 보았을 때부터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던 목성은 그새 지평선 쪽으로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저녁 8시경이었지만 날은 상당히 추웠다. 옷을 몇 겹 껴입고 목에는 아내가 준 옷까지 둘렀지만 손끝에서 전해지는 추위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난 행성 관측엔 실패하더라도 파인더 정렬은 맞추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화성을 찾아헤맸다. 그러다 주 망원경에 화성이 잡혔을 때, 난 마음속으로 '드디어!'를 외쳤다.
3.
주 망원경은 토성을 향해 있었다. 목성은 지고 없었지만 토성은 아직 서쪽 하늘 위에 살아있었다. 접안렌즈를 들여다 보니 저배율에서도 토성의 고리가 보였다. 접안렌즈를 고배율로 바꾸자 좀 더 확실하게 토성이 보였다. 난 친척들을 망원경 앞으로 불렀다. 고생한 보람이 생기는 듯했다.
4.
관측이 끝난 뒤에는 망원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려고 했다. 토성의 고리를 촬영할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의 망원경 촬영이었는지, 카메라와 망원경을 결합하는 방법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카메라에 T링을 끼운 뒤 망원경의 경통과 '마운트'시키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보고 맞춰보고 했지만 이들은 끝까지 서로의 '도킹'을 거부했다. 또 몇 십 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다른 기회가 또 있겠지. 난 망원경으로 사진을 찍을 마음을 접고 대신 카메라 삼각대를 꺼냈다. 망원경이 아닌 카메라 렌즈로 밤하늘을 찍을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천척 댁을 중심으로 별의 일주운동을 촬영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릴리즈가 없었다. 릴리즈를 또 집에 두고 온 것이다. 사용하지 않을 땐 카메라 가방에서 치근덕거리다가 쓰려고 하면 없는 릴리즈. 릴리즈 없이 일주운동을 촬영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냥 장노출의 일반 사진을 찍는 수밖에.
난 친척 댁의 집과 지붕을 배경으로, 전신주와 전선을 배경으로, 또 동쪽 하늘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밤하늘을 촬영했다. 이 시간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을 한 장이라도 건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운이 좋았다. 그날 밤은 은하수가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가스와 안드로메다 은하의 나선팔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는 되었다.
동쪽을 바라보고 찍은 밤하늘. 우측 하단에 플레이아데스 성단, 좌측 하단에 마차부자리의 카펠라가 보인다. 사진 왼쪽 중앙부에 별무리가 모여 있는데, 그중 가장 밝은 별이 페르세우스자리의 미르파크다. 그 오른편에는 미르파크보다 어둡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악마의 별이자 대흉의 별, 알골이 떠있다. 알골은 별자리 그림에서 메두사의 얼굴에 해당한다. 원주시, 2018. 10.7. 21:47. 노출 6초, ISO 1600.
역시 동쪽을 바라보고 찍은 밤하늘. 사진 왼쪽 위로 카시오페이아자리가 보인다. 카시오페이아자리에 속한 별들 중 제일 위쪽에 있는 별을 기준점으로 잡은 뒤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안드로메다은하가 있다. 사진 상단 중앙부의 희미한 별이다. 원주시, 2018. 10.7. 21:53. 노출 6초, ISO 1600.
남서쪽을 바라보고 촬영한 사진. 이날 하늘에서 가장 밝았던 별인 화성이 사진 중앙부에 떠 있다. 원주시, 2018. 10.7. 21:50. 노출 6초, ISO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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