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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부도의 테츠 레드탭 호완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5. 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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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 웨이토 세븐 데이즈, 세븐."


'테츠'라는 이름이 붙은 오리자시 호완[각주:1] 중 레드탭의 5N 사이즈의 호완을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상담을 해주던 쇼부도[각주:2]의 영업 담당, 다나카 슈이치 씨가 호완을 가리키며 기일을 알려주었다. 일주일 뒤에 호완을 받을 수 있다니, 당장 재고가 없단 얘기인가? 우리는 출국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일주일이나 기다릴 수가 없었다. 해외 수송비가 얼마냐고 여쭈자 다나카 씨는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위 리턴 투 사우쓰코리아 투데이. 위 캔트 웨잇 히어."


내가 손짓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흉내를 내며 이야기하자 그제야 사정을 이해하는 듯했다. 다나카 씨는 우리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어디론가 사라졌다.



2.

우리는 쇼부도라는 이름의 호구 제작업체에 들르기 위해 JR 야마노테선을 타고 고탄다 역에서 내렸다. 쇼부도는 명실공히 일본 최고의 검도 호구 제작업체로 알려져 있었지만 외부 손님에게 개방된 쇼부도의 공간은 상당히 좁은 편이었다. 2층에 전시실까지 갖춘 교토의 토잔도에 비하면 소박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좁은 곳에 몇 개의 장비와 죽도, 소품 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내 목적은 호완이었고 쇼부도 방문 이후로 또 다른 계획들이 잡혀 있었기에 다른 장비들에 자세한 눈길을 줄만한 시간은 없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호완은 '나나호시[각주:3]'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제품이었다. 그 맞은편에는 테츠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레드탭 시리즈의 호완이 늘어서 있었다. 두 제품의 차이가 무엇인지 묻자 테츠는 쇼부도의 오리지널이고 나나호시는 오리지널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에, 고레와 데자인 바이 테츠, 저스또 데자인. 벗 디스 이즈 테츠 오리지나루." 


다나카 씨가 호완 가장자리에 있는 이름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간단명료한 답이었지만 두 제품의 차이를 가장 쉽게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다. 테츠 오리지널 중 블루탭 호완은 전시되어 있는 게 없었다. 그럼 선택은 간단했다.



3.

어디론가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다나카 씨가 한 시간만 기다려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게 맞는 크기의 호완이 있긴 하지만 바로 사용할 수 없기에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그는 호완을 잡은 채 손목 부분을 열심히 돌려댔다. 오리자시는 천 소재의 제품이지만 가죽으로 만든 호완처럼 길을 들여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원래는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곧 일본을 떠나야 하는 우리의 사정을 생각해 먼저 작업을 해주려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그 사이 점심을 먹고 오겠다고 했다. 다나카 씨는 우리에게 근처에 있는 일식집을 소개해 주었다.


우리가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사이 어디선가 망치질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망치질 소리를 따라 가보니 장인이 호완을 다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살펴 보니 내가 구매하기로 한 호완이었다. 놀랍게도 호완을 다듬고 있던 사람은 쇼부도의 대표이사이자 테츠라는 제품명의 장본인인 테츠가와 씨였다. 부하 직원이 아니라 대표이사 자신이 직접 호완을 손질하는 모습에서 일본이 말하는 장인정신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4.

문득 다나카 씨가 부산에 있는 한 무도구 사장을 아느냐고 물었다. 이름을 알려주셨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다나카 씨는 그가 쇼부도에 무척 자주 찾아온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자신들의 호구를 구매하고자 한다면 그를 통하는 게 편할 거라는 이야기도 해주셨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난 그의 인터넷 예명만 알 뿐 본명을 알지 못했다. 다나카 씨에게 그의 인터넷 닉네임이 혹시 '신켄'이 아니냐고 여쭈었다. 다나카 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나카 씨는 그의 본명만 알 뿐 인터넷상의 예명은 모르시는 듯했다. 다나카 씨가 내게 그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어쩌면 부산에 갈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5.

"검도 레벨이 3 정도 올라간 것 같아."


다나카 씨가 가져다 준 테츠의 레드탭 호완 견본품을 양손에 끼고는 죽도를 잡은 채 싱글벙글 웃으며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내가 한마디 했다.


"오빠 기분이 3 올라간 거겠지."


역시 아내는 모르는 것이 없다.


도쿄 쇼부도 입구. 도쿄도 시나가와구, 2018. 5.26.


쇼부도 내부의 장비들. 여성용 죽도에는 죽도 끝에 빨간색 칠을 해놓았다. 도쿄도 시나가와구, 2018. 5.26.


쇼부도의 대표이사이자 경력 50년 이상의 장인, 테츠가와 씨가 출국을 앞둔 우리를 배려하여 서둘러 호완을 다듬어 주셨다. 도쿄도 시나가와구, 2018. 5.26.


점심 식사를 하고 오겠다는 우리를 위해 근처 일식집 위치를 알려 주고 계신 다나카 씨. 도쿄도 시나가와구, 2018. 5.26.


그렇게 내 곁으로 온 쇼부도의 테츠 레드탭 호완, 5N 사이즈. 상표 옆에는 성을 박아 넣었다. 서울, 2018. 5.28.



  1. 가죽이 아니라 검도복 같은 천 재질로 만든 호완 [본문으로]
  2. 도쿄에 위치한 호구 제작 업체.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를 우리식대로 발음하여 '정무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3.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를 우리식대로 읽어 '칠성', 즉 칠성 호완이라 부르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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