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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 다목적 칼, 다마하가네 다마스커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5. 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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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사용한 오래된 칼을 바꿀 때가 되었음에도 그냥저냥 사용하고 있었다. 돼지고기도 제대로 썰리지 않는 칼이었지만 연마를 조금 해주면 또 그럭저럭 쓸 수는 있었기에 손목에 조금 더 힘을 주어 사용하는 것으로 만족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어머니께서 일본에 가면 주방용 칼을 하나 사와 달라고 주문하셨다. 일본이 칼의 나라라는 걸 어머니께서도 잘 알고 계신 듯했다. 그렇다면 이참에 우리도 주방용 칼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슬며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기왕 일본에서 칼을 사는 김에 탄소강 소재로 된 제대로 된 칼을 써보고 싶었다. 탄소강은 녹이 매우 잘 생기는 것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칼을 관리하는 거야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난 무언가를 관리하는 것에는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으니까. 며칠을 사이에 두고 도쿄의 아사쿠사를 다시 찾은 건 그런 관심과 자신감 때문이었다. 문을 닫지는 않았을까 마음을 졸이며 찾아간 가파바시 거리는 해가 기울어 한산한 상태였지만 그곳의 칼 상점들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들로 제법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칼 상점을 조금 둘러 보고 나니 탄소강 계열의 규토[각주:1]를 구매하겠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우선 탄소강으로 만든 규토 자체가 많지 않았다. 탄소강 계열은 대부분 야나기바보초[각주:2] 혹은 데바보초[각주:3]였으니, 애초에 탄소강 규토는 수요가 많지 않은 듯했다. 그건 다목적으로 쉽게 사용하는 칼에 탄소강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방증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아내가 관리하기 어려운 탄소강 계열의 칼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이 칼은 가정에서[각주:4] 아내와 함께 사용할 예정이었으므로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규토 치고는 짧은 편인 180cm의 길이를 고른 것도 아내의 사용을 고려해서였다. 그것보다 크고 길면 아내가 사용하기에 무거울 듯했다.


그리하여 고른 것은 가타오카[片岡] 제작소의 스테인리스강 규토였다. 칼 표면에 '다마하가네[각주:5]'라고 써 있는 걸 보면 특이하게도 다마하가네를 이용하여 제조한 것으로 보인다. 단일 재질이 아니라 날과 그를 둘러싼 재질이 다른데, 다마하가네에 몰리브덴과 바나듐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합금(VG-5)을 크롬 13%의 스테인리스 강으로 감싼 형태였다. VG-5는 고급 스테인리스 소재인 VG-10보다는 날이 약간 무른 편인데 그만큼 연마는 쉬울 터였다. 이 칼은 칼의 절삭 능력보다는 유지관리의 편리함과 디자인의 유려함에 보다 무게를 둔 다목적 부엌칼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도쿄 가파바시 거리. 도쿄도 다이토구. 간판 위에 그려져 있는 칼은 데바 또는 규토로 보인다. 2018. 5.25.


도쿄도 다이토구의 칼 상점. 도쿄도 다이토구, 2018. 5.25.


가타오카 제작소의 다마스커스(정확히 표현하면 패턴 웰딩) 부엌칼. VG-5 소재, 63레이어, 전체 길이 180cm. 서울, 2018. 5.30.


  1. 서양의 셰프 나이프와 유사한 형태의 일본식 칼이다. 규토(牛刀)는 그 뜻처럼 원래 고기를 썰 때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야채를 썰 때도 사용하는 등 다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문으로]
  2. 회를 써는 데 특화된 기다란 칼. 과거 일본 관서 지방에서 많이 사용하던 것이 보편화되었다. [본문으로]
  3. 생선의 뼈를 자르거나 껍질을 벗기는 등, 생선을 손질할 때 사용하는 칼 [본문으로]
  4. 사실 가정에서 다목적 칼로 쓰기에는 규토보다 산토쿠가 조금 더 낫지만, 지금껏 이미 많이 보아온 산토쿠 형태의 칼보다는 규토처럼 조금 다른 형태의 칼을 써보고 싶었다. [본문으로]
  5. 타마하가네는 일본의 전통적인 도검 제작 방식으로, 철광석이 아닌 사철을 이용하여 칼의 강도를 높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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