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기르고 있는 말미잘. 2018년 4월 4일 촬영
1.
해수 동호인 중에서 말미잘을 일 년 넘게 키워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말미잘은 오래 키우기 매우 어려운 바다 생명체 중 하나로 인식되어 있다.
대부분의 동호인들이 말미잘을 일 년, 아니 육 개월조차 키워내지 못하는 건 말미잘의 이동하는 특성 때문인 경우가 허다하다. 대부분의 해수 동호인들은 수조 안에 수류 모터라고 부르는 인공 해류 장치를 두 개 이상 설치해 두는데, 상당수의 말미잘이 밤새 수조 안을 돌아다니다가(때로는 둥둥 떠다니다가) 이 수류 모터에 빨려 들어가 자신의 고단한 생을 마감하고 마는 것이다.
수류 모터의 간헐적 작동, 혹은 수류 모터에 망을 씌우는 방식으로 그 위험에 대비한다 하더라도 말미잘을 오래 키우는 건 쉽지 않다. 해수 수조를 집에 들이는 대부분의 동호인들이 말미잘이 자신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조에 집어 넣은 거의 모든 말미잘은 머지않아 수조의 옆면이나 뒷면으로 들어가 버린다. 적지 않은 비용을 치르고 산 말미잘이 보이지도 않는 곳에 들어가 있는 걸 원치 않는 주인은 말미잘을 강제로 떼어낸 뒤 다시 수조 앞쪽에 놓아둔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말미잘은 다시 주인이 원치 않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 반복되는 실랑이에 지친 주인은 말미잘을 방출해 버린다. 주인이 그 실랑이를 견뎌낸다고 하더라도 이젠 반복되는 강제 이주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말미잘 쪽에서 이별을 통보한다.
이런 이유로 산호를 오래 키운 사람들은 자신의 수조에 말미잘을 넣지 않는다. 말미잘이 계속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애써 배치해 놓은 산호를 흩트려 놓는 게 보기 싫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멈춰 있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앞서 말한 수류 모터와의 사고로 인해 유발되는 수질 악화로 값비싼 산호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산호가 아니라 해수어를 키우는 동호인들도 자신의 수조에 말미잘 넣기를 꺼린다. 말미잘이 해수어를 잡아먹는 것이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말미잘을 키우면 해수어의 치료에 사용하는 약품을 수조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수어가 자주 걸리는 병, 특히 백점병을 치료하는 약은 무척추동물에게 치명적인 경우가 다반사여서 그 약을 투여하면 높은 확률로 말미잘이 죽게 된다. 말미잘이 죽으면 수조의 수질을 악화시키므로 해수어를 키우는 동호인 역시 수조에 말미잘을 넣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누군가가 집에서 말미잘을 키우고 있다면 그를 막 해수 수조에 입문한 초보자라 가정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게 된다. 이제 막 해수에 입문한 사람들의 상당수가 '니모'라고 불리는 퍼큘라 클라운과 말미잘로 '물생활'을 시작하는 건 꽤 찾아보기 쉬운 광경 중 하나이다. 그런 입문자들은 해양 생명체를 키우는 지식이 상당히 부족할 수밖에 없고, 지식과 경험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말미잘을 희생시키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말미잘을 키워도 될만한 충분한 지식을 쌓게 될 무렵엔 이제 말미잘은 키우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말미잘이 키우기 매우 어려운 동물로 인식된 건 이러한 성향 때문인 경우가 상당하다. 어느 날 집에 와보니 수류 모터에 걸려 있는 말미잘, 자신의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는 말미잘, 돌 사이에 숨은 채 나오지 않는 말미잘, 산호 프랙을 다 넘어뜨려 놓은 말미잘, 수조 안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말미잘. 초보일수록 지난하게 느껴지는 그 강렬한 경험은 자신의 실수와 지식 부족을 탓하게 하기보다는 말미잘의 민감성, 예민함을 따지게 만든다. "수류가 맘에 안 든다고 물속을 떠다니다니, 자리가 좀 맘에 안 든다고 다른 데 가버리다니, 음식을 줘도 먹지도 않고 뱉어버리다니, 정말 민감한 생물이야. 이 생물은 초고수 아니면 키울 수가 없어."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던 동호인 가운데 하나였다.
2.
지금의 나는 말미잘이 정말 민감한 생명체인가 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거의 모든 동호인이 수질, 수조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쉽게 죽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말미잘이지만 지금 나는 수조를 완전히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일 년 넘게 하는 일이란 수조에 물보충을 해주는 것과 수조 외벽을 지우개로 닦아주는 것이 전부이다.
어떤 동호인은 내 수조의 물이 오래되어 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해수 동호인들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몇 가지 일을 일 년 넘게 전혀 하고 있지 않다. 첫째, 양말필터가 없다. 둘째, 스키머가 없다. 셋째, 이 사실에 어떤 동호인들은 매우 놀랄지도 모르겠는데, 물교환을 조금도 하고 있지 않다.
나는 위의 세 가지를 모두 행하고 있지 않은 해수 동호인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해양 생물을 키우려면 스키머와 양말필터를 장착한 수조를 갖추고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물교환을 해줘야 한다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편함 때문에 한두 가지 조건을 생략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세 조건을 모두 생략하면서 해양 생물을 키우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본 일이 있다면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무척추동물 일부와 해수어를 판매하고 있는 '이준 해수어 연구소'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 '연구소'는 동호인들 사이에서 삼류 취급을 받고 있다. 그 어떤 전문가와 베테랑 동호인도 그 작은 가게와 사장의 사육 방식을 모범으로, 혹은 고려해볼 만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이비, 좋게 말하면 신비한 도사의 사육법 정도로 여긴다.
집에서 기르고 있는 말미잘. 2017년 12월 29일 촬영
3.
물론 산호나 해수어를 '방치하는' 방식으로 키우는 건 권고할 만하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정말 방치가 맞느냐 하는 것이다. 동호인들은 자주 물을 교환해줘야 깨끗한 수질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 교환 때문에 발생하는 급작스러운 수질의 일관성 교란에 관해선 관심을 덜 갖는다. 만일 수조 내부에 있는 해양 생명체가 질산염 수치보다는 수질의 일관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아무리 염도와 온도를, 심지어 해수염의 종류까지 맞춰가며 물교환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물교환 자체를 상당히 줄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아무리 먹이를 주는 일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마트에서 사 온, 나름 싱싱한 해산물을 먹이로 제공하는 일이 정말 내가 기르고 있는 생명체에게 좋은 일인지도 고민을 해봐야 한다. 만일 말미잘이 그 싱싱한 먹이, 예를 들어 굴이나 오징어 다리를 먹다 말고 뱉어버린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동호인들은 말미잘이 뱉어버린 먹이를 집어 다시 입 근처에 가져다 댄다. 아깝다는 이유로 다 먹을 때까지 반복적으로. 그런데 집에 작은 바다를 만들어 놓은 동호인들의 수조 안에는 생각보다 매우, 아주 많은, 상당히 다양한 작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깊은 밤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수조에 대고 조명을 켜 보라.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작은 생명체들이 부리나케 도망침에 놀라게 될 것이다. 말미잘은, 우리가 굳이 따로 먹이를 제공해 주지 않더라도, 이런 작은 생명체들에게서 자신의 에너지를 채워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동호인이 이런 생명체를 보면 깜짝 놀라 없애 버리기에 바쁘다. 경험 많은 고수라는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넣지 않는 생명체는 다 없애버리라는 조언을 심심찮게 한다. 지네처럼 생긴 벌레, 징그럽게 생긴 불가사리, 뱀처럼 돌아다니는 기다란 괴생명체...... 이들은 집게로 제거되거나 주인이 수조에 뿌린 약품을 먹고 사망한다. 심지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바위째 끓는 물에 삶아지는 운명에 처한다. 동호인들은 이제 '청정한' 환경이 조성되었다며 기뻐한다. 그 뒤 말미잘에게 자신이 마트에서 사온 먹이를 먹이고, 그 먹이를 거부하는 말미잘 때문에 고민한다. 자신이 투여한 약품이 그 작은 생태계에 미쳤을 영향은 등한시한다. 그러고 나서 말미잘이 죽으면 역시 말미잘은 수질에 너무 민감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문제는 참을성이다. 많은 동호인들이 수조에 자신이 원치 않는 변화가 생기면 견디질 못한다. 이상한 벌레 몇 마리가 보이면 곧 큰일이 나지 않을까 걱정하다가 결국 수조에 손을 넣고, 벌레를 없애겠다며 이런저런 생물들을 집어넣다가 결국엔 화학약품을 뿌린다. 내 수조에도 동호인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생명체들이 나타난 적이 있다. 레드 플라나리아, 시아노 박테리아, 악성 이끼 등등... 적지 않은 동호인들이 듣기만 해도 몸서리치며 약품을 투여하곤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난 수조에 직접적으로 화학약품을 뿌리지 않았다. 약품을 써본 일이라곤 몇 해 전에 몇몇 연산호를 수조 밖으로 꺼낸 뒤 리프딥이라는 일종의 치료제에 담가봤던 게 전부이다. 그런데도 이들 '문제아들'은 급격히 번성했던 것처럼 한두 달 만에 급격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몇몇은 여전히, 특히 밤에 번성하며 수조 내 생물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
4.
이것은 말미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적어도 산호, 특히 경산호는 이런 방식, 거의 모든 동호인이 '방치한다'고 믿는 방식으로는 바다와 단절된 환경에서 키울 수 없다. 그러나 연산호에 해당하는 붉은 머쉬룸은 오히려 그 반대에 해당한다. 다른 산호는 다 죽어있지만 붉은 머쉬룸만은 거대하게 커가고 있는 대형 수족관의 해양관이 적지 않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럼 해수어는 어떨까? 적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난 해수어도 이런 '방치하는' 방식으로 일 년 넘게 키우고 있다. 따라서 해수어도 이런 방식에서 예외라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해수어는 수조의 크기, 전체적인 물의 양, 개체의 수, 같이 살아가는 해수어와의 친화도에 매우 큰 영향을 받으니, 관리법을 물고기의 수 같은 기본적인 환경 조건보다 더 우위에 놓을 수는 없다. 결국 비통제적인 방식은 말미잘, 일부의 연산호, 그리고 수조 크기에 맞는 적정 개체 수보다도 더 적은 수의 해수어를 키울 때 적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필수적인 관리법이 오히려 어떤 해양 생명체의 삶에는 심각한 불편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생명체의 환경에 인위적으로 개입해서 제거하고 옮기고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것이 오히려 그 생명체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변화를 가하더라도 빛의 강도나 음식물 투여량 같은 보다 작고 자연적인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내일 당장 개선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천천히 경과를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지녀야 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특히 초보자들에게 필수적인 교육이란 이들 생물을 기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떤 식으로 배치하라, 언제 바꿔주라, 조짐이 보이면 바로 개입하여 예방하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마음에 들지 않아도 놔두어라, 가만히 지켜보라, 관찰자인 '내'가 아니라 살아가는 '그'의 관점에서 보라, 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5.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삶이 꼭 이와 닮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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