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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형 및 동장형 죽도의 의미와 바른 표현, 그리고 왁스칠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8. 3. 22.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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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부터 '고도형' 죽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고도[古刀]'라는 것은 한자어를 보아 알 수 있듯 오래된 칼이라는 뜻이다. 검도에서 죽도는 칼의 대용이라 할 수 있는데, 고도형 죽도는 무게 중심의 분포가 실제 칼과 비슷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칼과 비슷한 스타일의 죽도라 하여 '고도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그럼 칼이면 칼이지 왜 '옛'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고도'라고 하는 걸까. 지금은 검도인 대다수가 실제 칼처럼 무게 중심이 잡혀 있는 죽도 대신에 손잡이쪽에 무게 중심이 오도록 되어 있는 죽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게 중심이 손잡이쪽에 위치한 죽도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다 보니 그 전에 쓰이던 죽도는 상대적으로 옛것이 되어 버려 예전 형태의 죽도, 즉 '고도형' 죽도가 되었다.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게 중심이 손잡이쪽에 있는 죽도를 흔히 '동장형' 죽도라고 부른다. '동장형' 죽도는 고도형 죽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고 그래서 다루기에 편리하다. 


여기에서 '동장'이라는 단어는 일본 한자를 우리 한자 발음대로 쓴 것이다. 국어사전엔 없는 표현으로 한국 검도계에 널리 퍼져 있는 일본식 표현 중 하나이다. 여기서 동장[胴張]은 '몸통 부분을 넓혔다'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배흘림기둥 형태를 떠올리면 된다. 인터넷에서 흔히 "동장형 죽도는 도바리가 두껍다"는 식의 설명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일본식 표현과 일본어 발음을 섞어 쓴 것도 문제이지만, 애초에 '도바리'는 일본 한자 '동장형'에서 '동장'만 따 훈독한 것이므로 위처럼 쓰면 의미 중복이 되어 버린다. 즉 위 예시의 문장은 "몸통부가 두꺼운 죽도(동장형 죽도)는 몸통부가 두꺼운(도바리) 두껍다"는 이상한 뜻과 형태를 하고 있다. 정 일본어를 섞어 쓰고 싶다면 "동장형 죽도는 도[胴]가 두껍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권장하고 싶지는 않은 표현법이다.



2.

고도형 죽도를 처음 써보았는데 생각보다 사용하기에 어려웠다. 평소 무겁고 무게 중심이 좋지 않은 죽도를 사용해 와서 고도형 죽도에도 금방 익숙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몸이 더 빨리 지치는 듯했다. 그날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결국 수업 도중에 죽도를 예전 걸로 바꿔 들어야만 했다. 고도형 죽도를 처음 들고 간 날 수업 내용이 하필이면 참가자 전원을 상대로 연속공격[각주:1]을 하는 것이어서 보다 가벼운 죽도로 바꿔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관장님은 죽도를 바꾸러 가는 내게 "무거운 걸로 해야 실력이 늘지!" 하고 타박하셨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 고도형 죽도로 참가자 전원과 연속공격이라니,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고도형 죽도는 조금 더 사용해봐야 정확한 느낌을 알 수 있을 듯하다.



3.

지금껏 검도를 해오면서 단 한 번도 죽도에 기름이나 왁스를 발라본 적이 없었다. 기름 바른다고 뭐 얼마나 달라지겠어 하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는 죽도가 깨지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서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고도형 죽도를 구입하면서 처음으로 왁스칠을 해보게 되었다. '의봉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고도형 죽도는 죽도치고는 가격대가 높아서 왁스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했다. 죽도는 가장 기본이자 중심이 되는 도구인데 그간 너무 소홀히 다루었나 싶기도 했고, 또 왁스칠을 하다 보면 내 어지러운 마음이 좀 다스려질 것 같기도 했다. 


내게 있어 왁스칠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순전히 의례적인 행위였다. 두 가지 측면에서 의례적이었으니, 하나는 죽도에 대해 예의를 차린다는 점에서, 다른 하나는 그 예의차림이 내 인격수양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의례적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허위허식인 셈이다. 그래도 어찌하겠나. 지금 당장은 성공과 실패와 무관하게 스스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여기에 공자의 일화를 비유하는 게 낯부끄럽지만 은자가 공자를 일컬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애써 시도하는 사람"[각주:2]이라고 했던 것도 비슷한 이치였으니.


왁스를 칠하기 위해 준비한 두 자루의 죽도. 왼쪽은 산케이 회사에서 만든 '의봉작', 오른쪽은 신켄무도구에서 구입한 '청류' 죽도이다. 왼쪽이 고도형 죽도이며 오른쪽이 이른바 '동장형' 죽도이다. 죽도 가운데의 몸통부를 보면 두 죽도의 형태 차이를 알 수 있다. 사진 오른쪽 위로 왁스가 보인다. 2018. 3.21.



  1. 이 연습법을 가리켜 흔히 '소아다리'라고 한다. 일본어 '総当り'가 우리식으로 변용된 것이다. 원래 일본 발음을 따르면 '소아타리'라고 해야 한다. 이것을 한자식대로 읽으면 '총당'이 되는데, 다른 한자식 용어들과는 달리 '총당'이라는 표현은 사용하고 있지 않다. '소아다리'라는 일본식 어투보다는 '전체연속공격' 같은 순화어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게 나을 것이다. [본문으로]
  2. 지기불가이위지자[知其不可而爲之者], "논어" (14-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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