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내게 입을 맞추었다. ㅡ단테 <신곡>, 지옥편
1.
소마 미술관에서 로댕의 작품, <키스>를 보았다. <키스>는 마지막 전시실인 제6전시실의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전시 공간이 좁아 한눈에 바라보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조각의 한쪽 공간이 막혀 있어서 모든 방향에서 볼 수 있다는 조각의 장점을 훼손시키고 있었다. 큐레이터의 작품 배치에 다소 아쉬움이 들었다. 1
2.
<키스>는 한쌍의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대리석 조각으로 난 특히 여자의 동작에 관심을 두었다. 남자의 자세는 조금은 소심해보일 정도로 평범한데 반해 여자는 한쪽 손을 들어올려 남자의 뒷목을 잡아 남자의 얼굴을 자신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여자의 한쪽 겨드랑이는 물론 젖가슴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여자의 얼굴 역시 바른 자세가 아니라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어 여자가 키스에 무척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런 여자에 반해 남자는 그저 자신의 손 하나를 여자의 허벅지에 살짝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여자에 비하면 소극적인 자세였다.
여자의 적극적인 몸짓에선 애욕이 엿보였다. 그것도 불륜이라는 결점을 지닌 애욕을. 로댕은 왜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그런 욕망의 몸짓을 씌웠는가? 이것은 좋은 논쟁거리가 될 수 있었다. 어떤 전통주의자는 정숙해야 할 여성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어떤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유혹의 장치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비난할 만했다. 반대로 진보주의자라면 여성의 사랑을 순종에서 진취성으로 이끌었다며 옹호할 듯했다. 오늘날 <키스>를 관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키스에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떠올릴 뿐이지만 누군가에게 그들의 키스는 무척이나 불편한 것이었다.
3.
오래전 이탈리아의 포강 유역에 살던 한 쌍의 남녀, 프란체스카와 파울로가 키스를 나누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여자의 남편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는 분노에 치밀어 그들에게 화살을 쏜 것이다. 그 한 쌍은 불륜을 저지른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 그리고 단테는 <신곡>, 지옥편에 그들을 만난 이야기를 남겼다. 그때 지옥으로 찾아온 순례자 단테에게 프란체스카는 '그이'가 자신에게 입을 맞추었고 고백한다.
프란체스카의 이 주장에 따르면 로댕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키스의 주체가 되도록 조각해야 했다. 하지만 로댕은 그러지 않았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 내용을 왜곡하면서까지 여성을 성경의 이브로, 즉 남편을 유혹하여 타락시킨 죄인으로 간주하려 했던 것일까? 그러나 로댕은 우리에게 <신곡>을 좀 더 제대로 읽어 보라 권할지도 모른다. 프란체스카는 그들이 '랜슬롯의 사랑 이야기'를 함께 읽어 나가던 중 입맞춤을 나누었다고 단테에게 털어놓는데, 정작 그 이야기는 여왕인 귀네비어가 랜슬롯에게 키스하는 것으로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랜슬롯의 사랑 이야기'에 자극받아 키스를 나누었다면 여자가 키스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 정황에 맞다. 프란체스카가 단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로댕은 그렇게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니 로댕은 여자의 자세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단테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4.
로댕의 <키스> 조각 옆에는 작은 설명판이 붙어 있었는데 주요 내용은 이 조각이 처음엔 인기가 없었을 뿐더러 비난의 대상이 되어 한동안 어디에 팔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것은 그런 논쟁의 무위성이며, 이런 무위성이 현대인들에게 가하는 인문학에 대한 따분한 염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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