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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봉산 팔각정자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11. 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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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부간선도로를 타며 내려가다 보면 처음에는 청계천과 중랑천의 합류지점이, 그 다음에는 중랑천과 한강의 합류지점이 나온다. 중랑천과 한강, 두 물줄기가 만난다 하여 두물개, 두물포 등으로 불리다가 지금은 두모교란 이름으로 남아 있는 다리를 건너면 곧장 강변북로가 나오는데, 이렇게 동부간선도로에서 두모교를 건너 강변북로로 이어지는 일련의 차로는 내게 꽤 익숙한 편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동부간선도로에서 성수대교쪽으로 진입하다 유턴하여 용비교를 건넌 뒤 뚝섬로를 탈 때도 있다. 이렇게 용비교를 향해 차를 돌리면 정면으로 응봉산이 보인다. 개나리가 활짝 피는 봄이나 되야 잠깐씩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응봉산이었지만 며칠 전부터 새삼 겨울의 응봉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뚝섬로를 타기 위해 용비교로 향하는 도중 극심한 도로 정체에 걸려 브레이크를 밟은 채 시선을 앞에 두고 있는데 개나리 줄기들이 밧줄처럼 얽혀 있는 응봉산의 화강암 암반 위에 정자 하나가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힐끗 쳐다만 보던 산이었기에 이제야 정상의 정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멀리서 보아도 그 위세가 자못 두드려져 집에 돌아와 어떤 정자인지 찾아보았다. 사진을 보니 팔각정이었다. 



2.

예전에는 팔각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중국의 천자를 받든 이후, 조선 같은 제후국은 팔각이라는 신성한 도형을 왕궁이나 사찰 같은 존엄한 곳 중에서도 난간 정도의 장식에나 쓸 수 있게 되었다.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일은 이제 하늘의 아들인 중국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으니 조선의 왕은 더 이상 하늘에 제사를 드릴 수도, 신적인 의미가 있는 표식을 쓸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원'으로 가는 중간 단계인 팔각은 원 못지 않은 중요한 도형이었기에 팔각정 또한 함부로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원과 팔각에 대한 금제는 중국과의 사대를 완전히 끊은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나서 풀리게 되었으니,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후 하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원구단을 지으면서 그 내부를 온통 팔각으로 치장한 것은 제국의 위엄을 팔각이 지닌 신성함으로 드러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구단은 지붕뿐만 아니라 기둥과 난간석조차 팔각으로 되어 있다. 


조선 초부터 한강 변에 여러 정자가 세워지기 시작했고 응봉산도 그 중 하나였기에 그를 본따 정자를 세워둔 듯 하지만, 조선 시대에 만들어 둔 정자가 여러 정황상 팔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응봉산 위에 팔각정에 들어선 것은 이제 그런 불필요한 의미의 답습을 따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탑골공원에 팔각정이, 남산 위에 우남정이 세워질 때까지만 해도 팔각은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듯하지만 지금은 팔각에서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현대에 세워진 양천구의 용왕정이나 북악스카이웨이의 북악팔각정, 응봉산 위의 응봉산정은 모두 그 위세가 등등하지만 그 당당함은 팔각의 의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각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팔각이든 팔정도의 팔각이든, 이제 정자의 지붕을 쳐다보고 그게 팔각인지 육각인지 아니면 사각인지를 따지는 인물은 주역이나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이거나 역사학자 혹은 건축가일 뿐이다. 아니면 여전히 알아두면 쓸데없는 것에 관심이 많은 신기한 한량이거나. 


다음 봄이 되면 아내, 그리고 아장아장 걷게 될 아이와 함께 응봉산에 올라 보고 싶다.


응봉산 위의 팔각정자. 서울시 성수동,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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