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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바퀴 (1) - 광희동 사거리, 장충동 일대 (2)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11. 22.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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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수표교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다. 내 물음에 아내는 곧바로 "청계천에 있는 거 아니야?" 하고 답하였으니 난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청계천에 놓여 있는 작은 다리 중 하나인 수표교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했는데 그걸 아내가 알고 있었다니(이럴 때마다 내가 아내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을 어찌 알고 있었느냐 하고 물으니 전에 그 주변을 걸은 적이 있다고 했다. 지나가다 한번 본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나로선 신기한 일이었다. 사실 수표교는 광통교와 더불어 청계천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라 할 수 있으므로 주변 사물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만한 것이긴 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기껏 관심을 보인 것이 하필이면 한물 가버린 몇백 년 전의 옛 다리라는 사실에 내심 탐탁잖은 표정을 짓게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긴 하지만.


그럼 나는 수표교를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표교의 첫 인식은 몇 년 전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위치한 세종대왕기념관에 갔을 때로 남아 있다. 그곳에 보물 제838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표가 있었다. 세속의 때가 많아서인지 국보나 보물이라고 하면 난 더 유심히 살펴보곤 했는데, 세종대왕기념관 야외에서 예상치 못하게 보물을 발견하게 되어 수표를 특히 더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이후로도 세종대왕기념관을 몇 번을 더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기념관 야외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석물과 수표를 한번씩 둘러보곤 했다. 이전에도 수표교란 단어를 어디선가 보았을 수 있지만 어쨌든 내 머리에 남아 있는 수표교의 기억은 이때이다. 수표를 설명하는 안내판에는 '수표교 옆에 있던 수표를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으로 옮겼다가 다시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당시 난 자리를 두 번이나 옮겨 잡아야 했던 이 기다란 돌덩어리의 조금은 기구한 운명과, 물의 수위를 재는 도구가 물과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세종대왕기념관 앞에 놓여 있는 의외의 처지[각주:1], 그리고 과거엔 함께 있었지만 지금은 멀찍이 떨어져 버린, 마치 이산가족과도 같은 수표와 수표교의 피난 현실을 생각하였다. 난 그때의 수표교를 기억해냈다. 청계천에 있는 나무로 된 수표교가 현대에 만들어진 복제품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진짜' 수표교는 청계천 복개 공사 때 수표와 함께 장충단으로 옮겨졌다가 지금까지 그곳에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진짜' 수표교를 보기 위해 장충체육관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박문사 터와 영빈관이 남아 있는 신라호텔을 지나쳐 장충단공원으로 향했다. 


수표교는 멀리에서도 잘 보였으니 장충단공원 안에 들어서기도 전에 돌로 만든 다리, 수표교가 보였다. 수표교의 옛 이름은 마전교인데, 그 앞에 소와 말을 파는 시장이 있다 하여 마전교라 했다. 세종 대에 마전교 옆에 수표를 세우면서 마전교의 이름이 수표교로 바뀌게 되었으니, 지금의 청계천에 있는 수표동은 이 수표교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표교는 알듯말듯한 작은 아치를 그리는 우아한 선이 아름다운 다리이다. 다리와 난간이 동일한 선을 이루며 중앙부에서 조금 솟아났다가 가장자리에서 다시 가라앉는다. 이 아름다움 때문인지 수표교는 정월대보름 전후로 벌어지던 조선시대 세시풍속인 다리밟기, 즉 답교행사 때 사람으로 가장 붐비던 다리 가운데 하나였다.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밤이면 사람들이 몰려나와 이 다리를 밟으며 일 년 동안 다리에 병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하였다 하니, 이수광은 <지봉유설>에 남녀가 몰려나와 밤새도록 다리를 밟았다는 기록을 남겼고, <정조실록>의 사관은 정월대보름의 답교행사를 위해 사흘 간의 야간통행이 허가되었으며 그동안 서울 백성들은 서울에 있는 다리를 모조리 밟고 다녔다는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그때의 수표교는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공원 한쪽 한적한 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다녔다는 운종가 아래에 위치했던 수표교 입장에서 보면 지금은 참으로 조용한 시절이라 하겠다. 


이제 우리는 퐁네프의 다리는 알아도 수표교는 잘 알지 못한다. 그것도 세상사의 흐름이라면 흐름일 터. 이번 정월대보름엔 내 오랜 하지불안증후군이 잠잠해지길 기원하며 수표교와 광통교를 거닐어 볼까 싶다.


장충단공원의 '진짜' 수표교. 한때 저 옆에는 잠시나마 수표가 세워져 있었다. 서울시 장충동, 2017.11.10.


  1. 내가 기념관 앞에서 수표를 처음 보았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기념관에 수표가 있는 것에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세종 대에 나무로 수표를 만들어 마전교(수표교의 옛 이름) 옆에 세웠다는 기록이 실록에 남아 있고, 또 세종 대에 당시 세자였던 문종이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한 바가 있으니, 비록 지금의 수표가 세종 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 해도 과히 엉뚱한 행정의 산물이라 여길 일은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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