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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도 손질, 그리고 손질 도구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9. 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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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꾸준히 관리하는 것에 비하면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구입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시작보다는 꾸준함이 보다 가치 있는 일로 느껴진다. 사람이든 도구든 관리를 하지 않으면 서서히 망가지게 되는 법이나 그런 꾸준함은 유지하기가 어렵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상하거나 못 쓰게 되는 걸 많이 보아 왔다. 그걸 알기에 시간을 내어 세법도를 손질하곤 했다. 장식물에 녹이 슬면 그걸 일종의 멋으로 간주할 수도 있지만 도신에 녹이 슬면 그건 방치의 방증이 될 뿐이니.



2.

도신에 바르는 기름으론 정향유[丁香油]를 쓰고 있다. 정향유는 정향나무에서 얻는 것으로 원료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향유라는 이름으로 도검용 기름을 판매하는 업체를 아직까지 본 적은 없다. 대신 어도유, 어검유[각주:1], 도검유와 같은 이름으로 정향유를 판매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해당 기름이 정향유 100%로 채워진 게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미네랄 오일을 바탕으로 정향유를 소량 넣었거나 혹은 향기만 첨가시킨 제품들일 텐데 아쉽게도 성분 공개가 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내역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내가 구매한 것도 원료가 정향유라고 소개되어 있을 뿐, 판매용 이름은 '최고급 도검유'였다. 일반적으로 정향유 성분이 표기되어 있는 도검유들은 적어도 미네랄 오일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라 '여겨'지고 있으므로 나도 그걸 믿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내가 도검용 기름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인체 무해성과 방부 능력이었으므로 최소한 미네랄 오일이어야 했고 정향이라면 더 좋았다. 정향은 방부효과와 살균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정'[丁]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는 향 또한 특유하여 도검유로 쓰기에 나무랄 데가 없었다. 정향이 들어간 도검유들은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두고 오래 쓸 것을 생각하여 정향유를 선택했다.



3.

먼저 칼을 칼집에서 꺼내 기존에 발려 있던 기름을 닦아냈다. 일본에서는 그 종이를 '누구이가미[拭い紙]'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기름 닦는 종이' 정도로 부르면 될 것이다. 기름을 닦아낸 후 도신에 숫돌 분말을 뿌렸다. 이때 쓰이는 망치 비슷한 도구를 일본에서는 '우치코[打粉]'라고 부른다. 이것은 숫돌가루를 실크에 담아 동그랗게 만 뒤 막대를 달아 만든 것으로, 이것을 도신에 대고 두드리면 실크의 구멍 사이로 숫돌가루가 빠져나와 도신 위에 뿌려지게 된다. 이렇게 숫돌가루를 뿌린 뒤 다시 한번 기름 닦는 종이로 도신을 닦아내면 남아 있던 기름까지 말끔하게 제거할 수 있다. 이때 처음 기름을 닦아냈던 종이와 숫돌가루를 닦아냈던 종이는 구분하여 따로 사용하는 편이다. 이렇게 기존 기름을 다 닦아낸 뒤 부드러운 천에 정향유를 묻혀 도신에 도포했다. 도신의 부식 방지용 손질은 여기까지이다. 기름이 잘 발렸는지 살핀 후 다시 칼집에 넣어 좌대에 올려 두었다.


세법도 손질. 가운데 있는 방망이가 숫돌가루를 담은 봉(우치코)이다. 2017. 9.12.


  1. 간혹 어도유, 어검유의 '어'에 '물고기어'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한글 명칭만 같을 뿐 미네랄 오일이나 정향유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름이므로 구분을 해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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