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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15) - 늦은 오후의 폐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4. 1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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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몰아 집으로 가는 도중, 뒷자리의 아내가 근처에 사진작가의 갤러리가 있다는 말을 꺼냈다. 차를 돌려 근처에 있던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니 잠시 후 도로 옆쪽으로 작은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덜컹거리길 잠시, 넓은 공터에 차를 대고 커다란 뜰이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라는 글자가 입구에 보였다. 아내는 그곳이 본래 폐교라 했다.

폐교란 아이들이 모두 떠났다는 걸 뜻한다. 아이들이 사라져 버린 학교. 어떤 연유로 학교는 그리 되어 버렸지만 현대에 와선 갤러리가 되었다. 폐교가 갤러리로. 해가 떨어지면 빛 하나 들지 않는, 어디선가 한 맺힌 울음소리가 들릴 것만 같던 학교가 갤러리로 재탄생했다는 것에 우리들은 안도한다. 아이들이 왜 사라져 버렸는지, 언제부터 폐교로 전락하게 된 건지, 학교의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과거의 연은 떨어졌고, 우리의 눈엔 산뜻한 외관의 건물과 잘 가꾸어진 정원이 보일 뿐이다.


갤러리의 원 주인이었던 김영갑 작가도 떠나고 없다. 김영갑 작가는 루게릭 병으로 세상을 떴고, 이제 그 자리를 다른 이들이 지키고 있다. 다소 불운한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 그는 고생 끝에 말년에야 자신의 꿈을 온전히 이루는 듯했지만, 결국 자신이 못다한 작업을 다른 이에게 넘겨준 채 이른 나이에 세상을 하직해야 했다.

갤러리에는 그가 실제 사용했던 사무실이 남아 있었다. 그 사무실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 쓰고 있는지, 아니면 고인을 기리는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남겨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난 그곳이 다른 누군가의 공간으로 바뀌지 않았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떠나버린 학교는 '존립'의 이유가 없지만 작가가 떠난 갤러리는 '존재'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자취를 학교에 남기지 않는다. 떠난 이들이 남기는 것이라곤 낙서와 흠집, 오래된 지우개 가루 같은 것들뿐이다. 어렴풋하게나 남아 있는 것, 간직할 만한 유산은 그들이 지니고 있을 유년시절 추억이다.  장년이 된 어느날 그들이 자신의 폐교로 돌아왔을 때 학교의 담벼락과 교실의 책걸상은 그들의 손녀에게 들려 주게 될 이야깃거리를 갑작스럽게 던져 준다. 하지만 시당국은 개개인의 그런 추억을 간직해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학교가 허물리고 나면 이제 그 추억은 그 누구도 재생시켜 줄 수 없는, 오로지 그들 자신만의 것이 된다. 그러나 작가는, 설령 그가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그가 남긴 작품이 그 공간을 지키도록 한다. 작품들은 그 공간을 점유한 채 작가 자신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으로 계속 살아남는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갤러리에는 생각보다 사진이 많이 걸려 있지 않았다. 그가 평생 찍었을 사진을 생각하면 적은 양이었다. 어쩌면 계절에 따라 혹은 달에 따라 전시 작품을 다른 것으로 교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을 물어 보지는 않았다. 가령 사진이 많이 걸려 있다면 또 어찌하겠는가? 지금은 김영갑 작가가 한창 작품 활동을 하고 있을 때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사진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그 수많은 사진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의 사진에 2초 이상을 소모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현상은 김영갑 갤러리에서도 뚜렷이 이어졌다. 벽에 걸려 있는 여러 개의 사진들이, 마치 영화를 촬영한 60프레임 속 하나의 이미지처럼 순식간에 내 눈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과거의 폐교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런 시대에 왜 나는 사진 갤러리에 와 있는 것일까? 왜 아내는 이곳에 오자고 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왜 이곳에 오는 것일까? 그런 것을 물어 보지는 않았다. 아내에게조차. 지금은 그런 의문조차, 질문조차 어색해진 시대가 되었다. 사진뿐이겠는가. 어느 한 명승지에 들르자마자 그곳을 제대로 관찰할 새도 없이 다른 유명한 장소로 바삐 이동하는 시대. 우리는 사진 한 장을 기념으로 남긴 뒤 그 장소를 떠나 금세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때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보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느꼈느냐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한때 그곳에 있었다는 것, 그것뿐이었으므로. 

존립의 선고가 유예된 한 무리의 군상들이 늦바람을 맞으며 폐교의 문을 나섰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휴게소와 후정. 2017. 4.11.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갤러리 후면부. 2017.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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