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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16) - 오름, 그 옛날의 제주 사람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4. 1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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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확실히 바람이 많은 곳이었다. 어디에나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많을 뿐 아니라 무척 강하기까지 하다는 건 오름을 오르며 알게 되었다. 기껏해야 뒷동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키의 오름들이었지만 바람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날 맞이하던 그 바람처럼 내 몸을 지나쳐 갔다. 때로는 그바람에 내 몸이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용눈이오름은 정상부를 한 바퀴 빙 돌아본 뒤 하산할 수 있게 산책로가 꾸며져 있었다. 길은 생각보다 경사가 져 있어 가뿐하게 오를 수 없었다. 옆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뿐 아니라 산책로 곳곳에 놓여 있는 말들의 배설물 때문에 걸음을 바삐 때기는 어려웠다. 때때로 말들도 길을 따라 걸었다.

용눈이오름 정상에 오르자 지평선과 수평선이 사방에 펼쳐졌다. 동쪽으로 우도와 성산일출봉이 뚜렷하게 보였고, 서쪽으로 희미하게 한라산이 보였다. 그 주변에 여러 오름들이 굴곡을 이루며 제각기 솟아올라 있었다. 수십 마리의 소라게들이 넓은 갯벌을 지나가다 그대로 눌러 앉은 듯했다.

새별오름으로 올라가는 길은 용눈이오름보다 더 비탈졌고 바람도 더 매서웠다. 난 아이가 맞바람을 맞지 않도록 얼굴 부위를 천으로 감싼 채 양손으로 아기띠의 어깨끈을 꼭 붙잡았다. 나를 밀어대는 바람에 의지하고 저항하기를 반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올라가다보니 곧 정상이었다. 정상에 오르는 걸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언제나 가르치고 또 배워왔지만 사방에서 펼쳐지는 이 광경엔 언제나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별 다른 예고 없이 갑작스레 솟아 있는 이 오름들은 작은 노력에도 이국의 풍경을 선사하는데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새별오름은 저녁에 샛별처럼 외롭게 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다른 여러 오름들이 주변에 솟아 있었다. 멀리 한라산도 보였다. 무엇이 외롭다는 것이었을까. 샛별은 새벽에 떠오르는 금성을 뜻했다. 그 이름도 외롭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니 너는 샛별처럼 밝을 수는 있어도 샛별처럼 외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군중 속에서도 외로울 때가 있었으니, 아버지 같은 한라산과 형제자매 같은 오름들 사이에서도 이 오름은 사람들이 보기에 외로웠나 보다. 그리고 고독한 것은 으레 반짝이는 법이라고, 그 옛날의 제주 사람들은 믿었나 보다.

우리는 새별오름을 내려와 그 옆에 홀로 서 있다는 나홀로나무를 잠시 응시한 뒤 다른 곳으로 떠났다.

용눈이오름. 2017. 4. 2.
새별오름에서 바라본 주변의 오름들과 구름. 2017. 4.14.
새별오름, 그리고 나홀로나무 2017.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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