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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10) - 박물관과 기념관 (2) (제주4·3평화공원)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4. 7.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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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이라는 날짜를 보고 제주 4·3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4월 1일이 되면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4월 5일이 되면 '오늘이 잊혀진 공휴일인 식목일'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는 경우는 있지만, 4월 3일이 되었을 때 '오늘은 제주 4·3 사건이 벌어진 날이지.' 하고 떠올리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그 사건을 주제로 삼은 기사가 전국권 뉴스 메인에 실리는 것을 보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4월 3일 당시에도 말이다. 사실 이것은 나에 대한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내가 이전에 제주 4·3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던가? 그런데 문득 아내가 말했다.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 번도 참석을 하지 않았었다네. 이번엔 탄핵이 되서 참석을 못하고."

난 4·3 희생자 추념식에 대통령이 참석을 했는가 안 했는가의 여부보다는 아내가 그런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에 내심 놀랐다. 그것도 내게 말을 꺼낼 정도로 말이다. 당시 난 다소 의례적인 호응을 해주었는데, 마음 한편에는 아내가 했던 그 말이 계속 남아 있었다. "4월 3일이 되면 평화공원에 한번 가볼까?"라는 물음이 "한번 가보자"로 변한 것은,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런 아내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주 4·3 평화공원 안에 있는 기념관 주변에 차를 주차하고 유모차를 준비하는 와중에 아내가 꺼낸 다음의 말은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 영산재가 하고 있다는데, 보러 갈까?"

아내의 시선을 따라 플래카드를 쳐다보니, 그곳에 희생자를 위한 영산재가 거행된다는 글자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게송 비슷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그 짧은 순간에 플래카드를 체크한 것도 놀라웠지만 영산재라는, 딱 봐도 재미없어 보이는 불교 의식에 가보고자 권유하는 것 자체 또한 놀라웠다. 나와 결혼하기로 마음먹는 여자는 결코 평범한 여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해왔었는데, 과연 아내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영산재? 시작 시간이 많이 지난 거 같은데. 이미 끝난 거 아니야?"

나는 대뜸 그렇게 대답하며 아내의 의도에 찬물을 끼얹는 듯 했지만 평화 기념관에 들어가자마자 안내데스크에서 사실 확인을 해보는 것으로 내 마음을 피력했다. "아, 네, 1시 반에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 있어요." 안내원이 바깥으로 연결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밖으로 길게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영산재가 벌어지고 있는 커다란 터가 나왔다. 위령제단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해당 의식은 막바지어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관객들은 많지 않았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영산재'라는 플래카드가 한쪽에 걸려 있었는데, 관객이 거의 없다보니 세계유산이라는 중요성으로 보나 추모 의식이라는 무게감으로 보나 위령제단의 무언가가 혹은 어딘가가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엇이 되었든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산재가 끝나자 우리는 공원 가운데에 세워져 있는 위령탑과 각명비를 지나 평화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의외의 공간은 이곳이었다. 난 지금껏 적지 않은 수의 박물관과 기념관을 돌아다녔는데, 제주4·3평화기념관은 그중에서 최고 중 하나라고 할 만했다.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동선, 내부의 구조,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심지어 예술성까지 뭐 하나 놓치고 있는 게 없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벽체의 이용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방문했던 거의 모든 박물관, 기념관 들은 페인트칠을 한 콘크리트 벽이나 가벽에 액자 형태의 전시물을 걸어두거나 일반적인 형태의 커다란 글자를 적어 넣는 것으로 벽을 꾸몄었다. 일반적이고 무난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벽 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조형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 기념관이 아주 오래 준비한, 고민 끝에 세워진 곳이라 느껴졌다. 4·3사건의 비극을 알리고 추모하고자 하는 염원이 예술을 통해 형식으로, 또 내용으로 기념관 내부를 풍성하게 채워 나갔다.

 

위령제단에서 열린 제주 4·3 희생자를 위한 영산재. 2017. 4. 3.
제주4·3평화공원의 전경. 사진 왼쪽이 위령탑, 가운데에 위치한 건물이 기념관이다. 위령탑 주변에는 다수의 각명비가 세워져 있다. 2017. 4. 3.
각명비. 만사천여 명에 이르는 희생자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17. 4. 3.
박불똥(박상모) 작가의 설치미술인 <행방불명> 중 일부. 철판의 구멍들은 행방불명된 3,000명의 제주도민을 뜻하며, 철선들은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날아가는 총알의 궤적을 나타낸다. 2007년 작. 2017. 4. 3.

 

위에서 바라본 전시실의 일부. 사진 하단에 있는 작품은 김창겸 작가의 미디어아트인 <한라산의 평화>이다. 2007년 작. 2017. 4. 3.

 

고길천 작가가 조소로 만든 <죽음의 섬> 중 일부.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모습을 형상화했다. 2007년 작. 2017.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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