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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으로 가는 길 (1)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2. 1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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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은지는 무척 오래되었다.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 건축붐을 일으켰다는 추측이 나오기 이전부터, 제주도가 전원주택지로 각광을 받기 훨씬 전부터 난 단독주택과 그 구조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관심은 형식적인 부분, 즉 토지를 구매하고 집을 짓는 일련의 과정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하나의 미적 대상으로서의 관심일 뿐이었다. 그래서 한옥에 관심을 가졌던 20대 초반의 시절부터 서양 건축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대 중반을 지나 언젠가 제주도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2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그 관심과 생각들은 주거의 관점에서 보면 막연한 크로키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제주도 땅값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게 되었을 땐 뭔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을 받았다. 저 제주도라는 땅이 관심이 대상이, 주거지로의 관심 대상이 되어 투기꾼들까지 몰리게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난 생각만 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제서야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다른 누군가의 관심 역시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안개 속에 있는 흐릿한 형상으로 남아 있었다. 건축물이라는 거대한 존재는 내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콜로서스처럼 보였으며 비용이라는 측면에선 실제로 그랬다.

 

나에게 있어 인테리어는 건축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다가서기 위한 실제적인 첫 발판이 되어주었다. 건축이라는 것은 큰 비용이 드는 일이었지만 인테리어는 그에 비하면 소박한 비용이 들 뿐으로, 일부는 내가 직접 만들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난 어려서부터 손과 도구 쓰는 일을 좋아했기에 건축이라는 분야의 일환으로 인테리어에 흥미를 쏟았다. 옛 기와를 고치고, 시멘트를 이기고, 흙손으로 벽을 다듬고, 전기톱을 맨 채 데크를 수리하러 가는 일이 싫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건축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였기 때문이었다. 인테리어 업체에서 기존 부엌을 뜯고, 타일을 바르고, 싱크대를 설치하고, 양변기와 하수관을 연결하는 과정을 곁에서 일일이 지켜보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콘크리트용 비트로 벽을 뚫고, 원형전기톱으로 나무를 절단하고, 샌딩기로 나무를 다듬고, 페인트로 나무를 칠하는 것, 실제로 도면을 그려보고 그것을 3D로 구현해보는 것, 이 모든 것은 시간으로 따지면 소모적이었고 비용으로 따지면 손해를 보는 일이었지만 건축으로 향하는 나의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계속 경험으로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그 경험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게 될지, 혹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지 난 알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내가 그 시기를 계속 늦출 수도 있고 앞당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삶은 항상 선택의 문제였고, 이 세계 역시 선택지로 내 앞에, 아니 이제는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계속 기다리다보면 더 좋은 선택지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면 더 빨리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혹은 더 좋은 선택지를 기다리다보면 평생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인생은 항상 먼저 선택하고 먼저 움직이는 자들의 것이었다. 그 결과가 당장 모두가 생각하는 성공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그 실패마저도 훌륭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은 인정할 만한 훌륭한 도약으로 보였다. 

 

재작년에 직접 그려보았던 아파트 내부 3D 투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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