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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밸런타인 데이다. 항상 그렇듯 그날이 다가오면 대형 마트들은 초콜릿들을 식료품 매장 입구에 전시해 놓아 까맣게 잊고 있던 그날의 도래를 알린다. 이미 많은 종류의 과자에 초콜릿이 들어가고 있지만 지금 이 시기가 되면 그 다양한 초콜릿 가공품의 세계에 더욱 놀라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초콜릿이란 무엇일까? 초콜릿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라면 이 '초콜릿'의 정의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국내에도 초콜릿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초콜릿들에 대한, 특히 좋은 초콜릿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코코아 매스의 함량이 높을수록 좋은 초콜릿이라는 것에는 거의 아무런 이견이 없다. 문제는 대개 코코아 버터에 관한 것이다.
코코아 버터가 문제의 원인이 된 이유는 우선 이것의 단가가 (수요와 공급 문제로) 비쌌기 때문이다. 본디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던 코코아 버터는 2014년에만 60% 이상 가격이 상승했으며 최근까지도 급격한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외국 업체들은 식물성 유지라는 대체재를 코코아 버터 대신 사용하려 하였고, 따라서 정부는 그에 맞는 규제를 신설하게 되었다. 유럽 공동체는 'Directive 2000/36/EC'를 발효하여 초콜릿 관련 제품에 5% 이상의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했으며 1, 미국 FDA는 식물성 유지의 사용을 제한하지 않는 대신 초콜릿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2 3 그러나 국내의 경우엔 아직까지도 식물성 유지나 코코아고형분의 함량에 맞춰 상당히 다양한 이름의 초콜릿 명칭(밀크초콜릿, 스위트초콜릿, 화이트초콜릿 등)을 사용할 수 있다. 4 그래서 외국과는 달리 코코아 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거나, 사용하더라도 미량만 넣은 그런 제품을 초콜릿이라고 불러도 되는지에 대한 비난이 국내에서 일게 되었다. 5
논란의 두 번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식물성 유지의 등장 때문이다. 특히 코코아 버터와 매우 유사하다고 여겨지는 CBEs 식물성 유지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는데, CBEs는 다른 종류의 식물성 유지, 예를 들어 CBRs이나 CBS와는 다른 고급 식물성 유지로, 성분이 코코아 버터와 거의 동일하기 때문에 이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고 있는 초콜릿은 별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렇기에 실제로 유럽의 많은 회사들이 CBEs를 사용한 초콜릿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인공적으로 만든 CBEs는 천연 코코아 버터에 비해 품질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으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식물성 유지가 CBEs인지, CBRs인지 아니면 보다 저급인 CBS인지를 알 수 없다는 반론이 나왔다. 적지 않은 수의 국산 초콜릿 회사가 저급한 팜유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나은 기대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유럽의 초콜릿 회사들이 자사 제품에 CBEs를 넣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5%라는 소량일 뿐이며 일부 제품에 한하고 있고, 그 또한 코코아 버터를 100% 사용한 제품에 비해선 좋은 초콜릿이라 할 수 없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6
세 번째 문제는 코코아 버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코코아 매스는 폴리페놀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에 인체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와 반대로 코코아 버터는 포화지방으로 구성되어 있어 인체에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따라서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선 코코아 버터 함유량이 높을수록 저급한 초콜릿이라는 생각이 퍼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코아 버터 대신 사용되고 있는 식물성 유지라는 불편한 존재 때문에 차라리 코코아 버터가 들어가 있는 제품을 더 좋게 평가하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 연구는 코코아 버터에 들어 있는 포화지방이 다른 포화지방과는 달리 인체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소비자로서는 코코아 버터에 관한 이런 논란이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7
그런데 국내에서 이런 코코아 버터의 문제를 따지기는 시기상조인 듯하다. 어쨌거나 초콜릿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코코아 매스의 함량인데, 국내의 초콜릿은 이것조차 외국에 비하면 함량 미달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요일에 방문했던 국내의 한 대형마트는 '수제 초콜릿'을 집에서 직접 제조해 먹을 수 있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성분 표시를 보니 내용물이 모두 '준초콜릿'이었다. 국내에서 준초콜릿이란 명칭은 코코아고형분의 함량이 7%만 넘어가면 붙일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은 외국에선 초콜릿 취급을 받을 수 없는 수준이다. 준초콜릿으로 수제 초콜릿을 만들어 보라며 권하고 있는 형국이니, 코코아 버터를 논하기 전에 코코아 매스부터 제대로 해야 할 판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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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모카를 만들 때 필요한 약간의 초콜릿을 사왔다. 마트엔 정말 많은 종류의 초콜릿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커피에 넣을 만한 좋은 초콜릿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고른 초콜릿은 놀라운 가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카페 모카에 조금씩 넣을 용도로는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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