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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상어 조선세법도 (2), 분리와 통합 사이의 긴장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7. 2. 4. 00:12

본문

1.

현대인에게 조각이라는 예술 분야는 회화 그 이상으로 실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특히 실용 제품에 들어서면 그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실용 제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품 자체의 '스펙'으로, 다른 요소는 다소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칼이라는 '옛' 실용 제품 역시 장식적인 측면보다는 칼날의 견고함, 절삭 능력, 무게 등이 중시되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중요시했던 것은 도검의 예술성이었다. 내게 있어 칼의 '사용' 목적은 칼의 본질적인 쓰임인 베기가 아니라 형의 수련에 있었다. 칼날이 얼마나 물건을 잘 베는지, 대나무를 베어도 칼날이 손상되지 않는지 등은 내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에게 칼이라는 본체는 기본적인 능력만 수행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관심은 자연스럽게 장식을 향했다.


오늘날처럼 분업화된 기계화 사회에서 조각과 같은 개인적 기교가 쓸모 있게 생각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심미안과 정신을 가진 사람은 더욱 줄어들고 있으니, 현대의 세계에선 분업화된 일들을 하나로 통합해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생각지 않은 분야의 한 전문가가 도검 자체에 대한 이해는 물론, 금속 및 나무를 다루는 능력과 조각에 대한 미적 감각 또한 가지고 있었으니, 난 아내의 제안과 호응에 힘입어 애초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의뢰를 하기에 이르렀다. 예술성을 띤 칼을 주문하게 된 것이다.


난 원도검이라는 도검 제작업체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도검 제작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놓은 작업 결과물과 작업 당시의 단상들이었는데, 그가 써내려간 도검 제작에 관한 안목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도신 제작과 조각 장식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경험을 글로 써내려간 노력이 그를 한 사람의 예술가로 간주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또한 그는 사진에 대한 감각이 있었으니, 이것은 그가 미에 관한 '오페라풍'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그의 조각이 지닌 특출함은 그가 매우 독특한 분야에서 그에 맞는 경험을 쌓아왔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의 조각이 배경과 떨어져 그저 하나의 사물 그 자체로 따로 놓여져 있다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조각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의 위치를 알고 있으며, 그 목적을 근간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었다. 허버트 리드는 현대의 조각가를 "자신의 영역과 기법에 대해서 보다 확실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 나름대로의 순수하고 힘찬 예술을 자유롭게 개발"하는 사람으로 정의한 바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이경세 작가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가 도검에 새겨넣은 조각은 일정한 정답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가진 무언가, 즉 예술품을 지향하고 있었다.


그가 가진 약점으로 구체성이 약하다는 걸 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즉 도검이라는 실체와 그에 붙어 있는 조각에 유기적인 관계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주문자의 요구에 맞춰 물건을 만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검과 아무런 구체적 연결성이 없는, 예를 들어 '사다리' 같은 것을 새겨 넣어달라고 주문하더라도 그는 그 요구를 묵살할 수 없는 것이다. 도검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그와 연관된 추상을 조각으로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는 제작가가, 예술가가 일관되게 견지해야 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해야 한다. 물론 위대한 작가들은 소재나 주제와 상관없이 분위기로 그것을 만들어 낸다. 혹시 이경세 작가의 작품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나는 내 도검이 고래상어라는 일관된 주제로 연결되기를 원했다. 오래전 고전주의 조각가가 대리석으로 성령을 형상화했다면 그는 검과 연관된 통일체를 금속으로 형상화해야 했다. 그것도 고래상어를 이용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고전적 이상의 추구가 예술이 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가 도검에 감입해 넣은 조각이 우리의 감성을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떤 사물이 주문자나 관찰자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상징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2.

애초에 조선 환도나 일본도의 부품에 어떤 목적으로 장식이 들어가기 시작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고대부터 그래왔듯 재앙으로부터의 주인을 보호하고 상대방에겐 위압감을 주며, 또한 칼 자체에 신비적 염원을 담기 위해 도검 장식이 시작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현대에 와서 도검에 조각 장식을 넣는 것은 기능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심미적이며 때로는 아주 막연한 주술적인 목적 때문이다.


코등이 장식엔 보통 생물이 들어가는 편이다. 생물이 아니라면 자연에 속한 사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한다. 하지만 코등이 장식으로 자연적이며 유기적인 형태를 띤 조각만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도신 고정 장치는 물론 코등이에 기하학적이며 무기적인 형태의 장식이 들어가기도 한다. 칼날부의 물결 무늬, 칼끝이 이루는 선 역시 비구상 조각예술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즉 도검은 추상의 형태를 추구하면서 틀에 박힌 관념을 벗어나게 되었다. 이들이 이루는 선은 기능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을 테지만 점차 정서적 욕구를 자극하게 되었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일부의 장식이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에도 시대에 출현한 일본 작품의 모방일 때가 있으며, 조각으로 본뜬 사물이 자연과 완전히 닮은 형태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이경세 작가는 고래상어의 등쪽 피부가 검은 빛을 띠고 있기 때문에 코등이에 감입해 넣은 고래상어의 피부 역시 검은 톤으로 하였다고 내게 설명한 적이 있다. 이것은 그가 자연을 모방함으로써 생명력을 구체화하려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음을 드러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조각을 비판하며 서술했던 과거의 역사[각주:1]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예술의 어느 시기까지는 그러한 경향을 훌륭한 것으로 인정하였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예술은 그런 방식을 지향하고 있지 않다. 그가 잠깐 보였던 그 경향은 그가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확고한 성향이라기보다는 주문자들이 지닌 일반적인 경향에 자신의 스타일을 맞추려고 했던 탓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든 다른 작품에서는 그가 자연을 사진처럼 모방하려 한다는 의심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등이에 감입해 넣은 고래상어의 피부 역시 지금은 검은 착색을 벗겨낸 상태이다. 그가 에도 시대의 장식을 모방하곤 하는 이유는 과거의 예술품을 답습하는 것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내는 과정의 산물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스스로 자신의 몇몇 작품이 과거의 모방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라오콘을 비롯한 고대 로마의 유명한 대리석 조각상들 중 상당수가 그리스 예술의 모방품, 복제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3.

코등이에 감입한 고래상어와 작은 물고기 조각에는 조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피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은 이 장식이 사방에서 관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코등에 부조 형식으로 넣은, 대체로 한쪽 방향에서 바라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양감을 부각시킬 경우 상대적으로 코등이의 무게가 증가하고, 또 손가락과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에 수련 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작가가 부피를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작가는 고래와는 다른, 상어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수직 형태의 꼬리를 옆으로 누워있는 것으로 형상화하면서까지 양감의 상당수를 희생해야 했다. 실제처럼 꼬리를 세우면 손가락이 찔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뒷지느러미처럼 볼륨을 세밀하게 구현해 낸 곳도 있으나 역시 '입체'라는 면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 부조가 수련용에 쓰일 코등이에 새겨졌다는 제약 사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제약은 오히려 과거에 러스킨이 다음과 같이 말한 바를 상기시키는 데가 있다. "외형의 억제란 일정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단순한 제한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억제에 의해서 장식이 보다 강력한 호소력을 갖게 될 뿐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기꺼이 억제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뜻한다." 


코등이의 고래상어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예술성은 양감보다는 구도에서 온다. 미켈란젤로의 시대에도 성행했던 조각의 정면 구도는 로댕에 이르러서야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이경세 작가는 은이라는 재질을 훌륭히 표현하는 동시에 고래상어라는 이미지를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래상어의 평범한 옆면이나 윗면이 아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듯한 독특한 구도에서 찾아냈다(아래 사진 중 세 번째). 또한 고래상어의 운동성을 상어 주변의 물결로 형상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손잡이 머리 덮개에 감입한 고래상어는 코등이의 상어에 비하면 양감이 크게 느껴진다. 손잡이 머리 덮개는 손잡이의 끝부분에 달려 있으므로 새끼손가락으로 맨 뒷부분을 감싸쥐지 않는 한 크게 불편하지 않고, 따라서 입체감을 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직접 찍은 손잡이부의 장식(아래 사진 중 첫 번째)을 보면 다른 조각에 비해 해당 장식에 빛에 의한 명암이 훨씬 더 많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손잡이부의 장식은 사용자가 검을 잡았을 시 이질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근본적인 제약을 벗어나지 않았다. 허버트 리드는 건축과 조각에 관한 오랜 딜레마에 대해 말한 바 있는데, 그것은 "조각가가 건축의 외형적인 형태를 고려해야 하는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과, 조각이 "건축적인 기능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의 흔들리지 않는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두 분류에서 보자면 원도검의 이경세 작가는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아야겠다. 물론 이 작가는 (주문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혹은 그 스스로) 오로지 관상을 목적으로 하는 도검 장식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야 할 이유는 많지 않다. 위에서 인용했던 러스킨의 '외형의 억제'에 관한 생각처럼, 만일 조각이 건축이나 다른 사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면 조각은 그 스스로의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상대와의 조화를 위해 자신의 완전성의 일부를 파괴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4.

도검, 특히 일본도[각주:2]에 장식으로 들어가는 조각이 보다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부속들이 모두 분리 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건축물에 장식되어 있는 조각들은 그것이 분리 불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에 건축물의 단순한 부속물로 여겨지곤 했다. 조각은 건축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도구, 좋게 평가하더라도 건축물과의 통일체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존재할 수 없었다. 조각이 건축물과 대등한 독립된 예술품으로 인정받기까지 실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일본도는 부속이 모두 분리 가능하여 하나의 개체로 사람들 앞에 놓여질 수 있었다. 여기에 놓인 여러 부속이 조각이라는 예술로 일찍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도 특유의 분리 가능성에 있었으며,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즉 일본도의 조각은 일본도와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피할 수 없기에 일정 부분의 순응과 희생을 거쳐야만 하는 통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동시에, 다른 예술과는 조화될 수 없는 완전한 형태의 독립된 조각 예술로도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 온 영국 박물관의 그리스 조각상은 관람해야 할 거리감의 상실로 건축물과의 합일에서 오는 힘을 잃고 말았지만, 코등이의 조각은 일본도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사로잡는 듯했다. 이것은 딜레마라기보다는 풍요로운 선택일 수 있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분리 가능성은 일본도 장식의 특유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예나 지금이나 설치 위치가 미리 정해져 있는 대다수의 조각은 원래의 고정된 위치를 벗어날 수가 없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 대부분의 조각이 부조로 되어 있는데, 이집트인들은 조각이 그들의 건축물에 종속된 채 건축물의 기능적 요구만을 충실히 따르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부조를 건축물에서 분리하여 그 자체로 존속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도검의 아름다운 장식은 단순히 기능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이들을 점차 칼에서 분리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발생하게 되었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기도 하였으니 그 욕구는 더욱 커져만 갔다. 하지만 조각가가 장식과 도검이 통일체를 이루도록 의도했다면 장식은 도검이라는 태초에 정해진 곳에 위치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멀리 떨어져 감상하도록 만들어진 높은 위치의 조각을 굳이 땅으로 끌고 내려와 자세히 들여다 본 뒤 실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분리에 대한 우리의 욕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것이 부조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즉 도검에서의 차원 높은 예술성이란 조각을 도검에서 독립시키고자 하는 욕구와 그곳에 위치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팽팽하게 긴장감을 이루는 그 순간 탄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이 바로 고래상어 조선세법도, 그곳에 살아 있었다. 


손잡이부의 부속과 장식


손잡이부의 부속과 장식


코등이의 고래상어와 물고기 장식


도신 고정 장치의 장식


칼날부의 형태


*도검 제작 및 사진촬영: 원도검 이경세 작가



  1.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조각을 경멸했으며, 예술의 목적이란 눈에 보이는 모든 자연현상을 모방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가 해부학과 원근법에 관심을 갖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본문으로]
  2. 조선 환도는 칼의 부속품, 즉 동호인이나 덧쇠 등을 쉽게 분해할 수 없지만, 일본도는 각각의 부속을 쉽게 분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조선세법도는 검집을 제외한 다른 부분이 모두 일본도의 가타나를 본따 만들어졌기 때문에 부속 역시 쉽게 분리 가능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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