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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가 '검도/켄도'의 구분처럼 한국과 일본의 무술 용어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므로 번역도 그 방식을 따랐다. 1
한국 - 켄도의 검은 배 (Korea - The Black Ships of Kendo)
켄도의 국제화, 그리고 올림픽 문제
(from International Research Centre for Japanese Studies, 2004)
저자: 알렉스 베넷 (Alexander Bennett)
번역: 김영욱 (http://solutus.tistory.com)
일본의 부도(무도의 일본식 표현. 역주)는 세계의 체육 유산에 대단히 큰 공헌을 했다. 사실 나는 부도가 일본의 가장 성공적인 문화 수출품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어디를 가든지 당신은 아주 높은 확률로 도조(도장의 일본식 표현. 역주)를 만나볼 수 있다. 심지어 그곳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의 가장 외딴 마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도조를 방문하면 그 지역 사람들이 맨발을 한 채 일본 도기(도복의 일본식 표현. 역주)를 입고 일본어로 구령하며 일본의 방식으로 인사하는 걸 볼 수 있다. 또한 도조에는 대개 일본의 국기 혹은 그 도조에 커다란 공헌을 한 일본인 스승의 사진이 걸려 있다. 흥미로운 점은 도조에서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본에 가본 적이 없으며, 또 일본인을 만나볼 기회도 많이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에 있는 도조가 실제 일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으며, 또 문화는 그 지역의 특별한 사회적 환경과 다양한 관점에 따라 수정될 수 있으므로 다소 특이한 방식처럼 보이는 일들이 외국의 도조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부도 훈련에 동참한다:
1. 문화 체험 (일본 문화를 지속적으로 접하고자 하는 일본 이민자, 지역사회와 교류하길 원하는 일본 교환학생, 사업가, 또는 일문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 주민)
2. 전투 기술 습득 (자기 방어술, 싸우는 방법을 배우길 원하는 사람들, 경찰, 군인 등)
3. 건강 관리
4. 정신적 안정 (어떤 사람들은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무술을 배운다. 아이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학부모 또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5. 대련 스포츠의 흥분 만끽
6. 정신 수양 (동양 무술은 '불가사의한' 철학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7. 경제 전략 사례 연구 (비록 버블 경제로 드러나긴 했지만, 과거 일본의 경제적 성장 비결은 '사무라이 전략'이라는 경영법 덕분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고, 그래서 회사원들이 단체로 무술을 배우기도 한다)
8. 1차 세계대전 전후의 강제 징집자들과 군인들 강화 (한국과 타이완은 일본의 위성 국가였으며, 극히 일부의 전쟁 포로들은 일본 경호원이나 군인을 통해 해당 무술을 우연찮게 배울 수 있었다. 그런 전투 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세운 많은 유술 학교가 서양에 있다)
최근 새로운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또한 근래의 무도 대중화에 커다란 기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도조보다는 되려 도장이 세계의 중요한 동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도장은 도조의 한국식 표현이다. 일본인이 떠난 곳에 자리를 잡은 한국인들은, 위에 간략히 서술했던 부도 훈련의 다양한 장점들을 이용하여 긍정적인 진전을 이뤄냈다. 특히 한국인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주도 도조(유도 도장의 일본식 표현. 역주) 대신에 유도 도장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태권도는 일본의 호신술인 가라테를 제치고 경쟁적 스포츠인 올림픽에 선정될 수 있는 이점들을 마련했다. 합기도 또한 일본의 아이키도를 한국화한 것이다. 켄도(검도의 일본식 표현. 역주)계에서 검도는 한국의 이민자 자녀들을 중심으로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단계이다. 하지만 검도는 켄도를 국제적 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에 따라 검도는 앞으로 일본 내에서도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해외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부도의 '한국화' 현상은 한국인이 지닌 그들 고유의 무술 전통을 국제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무술 전파에 굉장히 적극적인데, 그 과정에서 때때로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먼저 개관한 일본 도조에 상업적 동반자 관계를 제의하는 것은 물론, 학생과 지도자에게 매력적인 이점들을 제시하는 등의 상당히 상업적인 접근을 펼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일본 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 논문에서 나는 켄도를 예로 들어볼 것이다. 켄도가 아닌 검도의 전파 상황은 특히 일본 내에서 눈에 띄는데, 최근 한국에서 세계검도협회(WKA)가 발족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 단체는 일본의 국제켄도연맹(IKF. 현재는 FIK로 표기하고 있다. 역주)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현 켄도국제이사회 회장에게 명백히 반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WKA가 자신들의 주목적으로 삼고 있는 검도/켄도의 올림픽 종목 선정은 전통적인 일본 켄도 사회가 격렬하게 반대해온 사안이다. 전문적인 켄도 잡지들이 이 새로운 국면을 주요 이슈로써 과장하여 선전하고 있지만, 내 생각에 실제 현실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상황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히 심각하지는 않다. WKA의 발족은 오래된 논쟁거리인 '강한 켄도'(스포츠 지향)와 '올바른 켄도'(전통과 문화 지향)에 대한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올림픽은 스포츠 세계의 정점에 서 있지만 일본 중심의 많은 켄도 수련생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일본의 현재 켄도 상황에서 보건데, 그들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반드시 고심해봐야 하는 중대한 모순과 불일치가 존재한다. 이 관점에서 나는 검도를 한국발 작은 진동, 즉 '검은 배'(에도 시대에 일본의 해안가에 나타나 개화를 압박했던 서양의 '흑선'을 상징. 역주)로 간주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 켄도란 어떤 것인가, 하는 진지한 성찰을 이 검은 배가 불러 일으킬 것이다.
켄도 혹은 검도?
한국인들은 아직도 1910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지속됐던 일본의 식민지배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은 한국인들을 '일본화'하기 위해 그들이 자신의 고유 문화를 버리도록 강요했으며, 뒤이어 한국 문화의 자취를 아예 뿌리째 없애 한국을 일본의 위성 국가로 전락시키려는 전면적인 시도를 펼쳤다. 일본에서 켄도와 다른 부도 기술들은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배워야만 하는 과목들으로 승격되었다. 일본 파시스트 정권은 이 과목들을 이용해 국민들의 투쟁심을 키우고, 그들에게 민족주의적 열망을 불어 넣으며, 더 나아가 고귀한 전사로써의 자존심을 배양시키려 했다. 그 결과, 쇼와 시대의 재발명품인 부시도(무사도의 일본어 표현. 역주)에 기반한 도덕주의적 가치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일본을 세계에서도 눈에 띄는 독특한 나라로 인식되게끔 하는데 일조했다.
당시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한국과 타이완의 국민들 또한 이런 활동에 동참해야만 했다. 한국인들은 미처 예상치 못한 열정을 가진 채 부도를 대했고, 심지어 전쟁이 끝나고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켄도에 헌신했다. 하지만 식민지배라는 오랜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전국적인 수정주의의 관점에서, 그 스포츠의 기원이 일본에 있다는 개념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 수정주의 사고방식을 입증하기 위해 대한검도회의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역사란의 내용을 인용하겠다.
"우리나라 검술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고구려는 칼과 다른 무기술 연마를 위해 금욕을 강조했고, 백제는 칼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장인을 두었으며, 뛰어난 실력을 지닌 검사를 일본으로 보내 그들에게 검술을 가르쳤음을 암시하는 기록을 남겼다. 검술은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러 크게 발전했다. (...) 이 시기에 신라인들은 "본국검법"을 만들어 검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본국검법"은 양손검과 현대 검도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 그러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군사적 기술은 인문 사상에 비해 홀대받게 되었고 곧 일정한 양식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반면 이 시기에 우리 문화의 수혜자인 일본은 검에 관한 문화를 조성하여 검술을 번성시켰다." (저자가 인용했다는 대한검도회 공식 홈페이지의 해당 내용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역주)
대한 검도회의 공식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이어서 하고 있다: 여러 전쟁과 반란을 경험하게 된 조선 중기의 군신들은 그 과정에서 군사기술을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정조는 군사 훈련과 전략을 그림으로 덧붙여 설명한 "속병장도설"(아무래도 저자 알렉스 베넷이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무예도보통지"와 "속병장도설"을 혼동했거나, 아니면 예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해당 내용을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속병장도설"은 정조가 아니라 영조 때 편찬된 이론서이다. 역주)에 당시까지 기록되어 있던 24가지 무예 중 검술을 포함시켰으며, 이 책을 군사 훈련용 교본으로 채택하였다.
이제 공식 홈페이지는 1896년에 경찰학교에서, 그리고 1904년에 군사 학교에서 켄쥬츠(겟켄. 격검의 일본식 표현. 역주)를 가르치게 된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 해당 홈페이지 문서에 따르면, 격검이란 용어는 1910년에 검도로 바뀌었다. (...)
한국은 분명 오랜 검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일부 KKA 공식 사이트는 현대의 검도/켄도 형태를 정립하여 전세계에 보급한 것은 일본이라며 그 노고에 기꺼이 감사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검도의 더 큰 발전은 이제 우리의 손에 달려 있으며, 앞으로 이론과 기술 방면에서 일본을 추월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검도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이런 말은 일본 검도인들에게는 무척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들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종주국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검도와 켄도는 몇 가지 복장의 차이를 제외하면 본질적으로 같다. 한국인은 검도 훈련 시 그들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색이 다른 깃발을 사용하며, 준거(손쿄의 한국식 표현. 역주) 및 일본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몇 가지 일본식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또 복장에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이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하카마에 코시이타('허리 판자'의 일본식 표현. 보통 '요대' 혹은 '요판'이라고 부른다. 역주) 대신에 벨크로 벨트를 붙여 사용한다. 이에 대한 실용성 논란이 있고, 또 실제로 실용성에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이것은 켄도에서 받아들일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일본이 마음대로 정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항의성 태도이기도 하다. 이런 표면적 차이를 제외한다면 평범한 관찰자가 검도와 켄도의 차이를 구별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 사실, 세계 대다수의 국가의 사람들은 검도와 켄도가 함께 공존하며, 몇 가지 용어의 차이를 빼면 동일한 환경에서 훈련하고 경쟁하는, 근본적으로 같은 무술이라 생각한다. 최근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한국의 많은 젊은 검도인들 사이에서, 그들이 사실은 일본 스포츠를 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조용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이들은 검도의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상급자들의 주장에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여전히 검도 활동을 하고 있는 많은 윗세대들에게, 일본의 영향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암시, 그리고 현대적 형태를 기반으로 검도의 종주국을 결정하려는 행위는 그저 혐오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Part2부터 결론부까지의 내용은 원문PDF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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