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인테리어를 변경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몇 달에 걸쳐 천천히 물품들을 보고 다녔다. 주방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을 고르는 데 있어 고려 1순위는 싱크대 상판이 원목이어야 한다는 것과 아일랜드 식탁의 앞면이 밋밋한 (심지어 아무런 마감도 하지 않은) 합판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성 제품을 파는 유명한 대형 가구점들은 거의 대부분 인조대리석만을 상판으로 사용할 뿐 원목 상판을 다루지 않았다. 또 이러한 대형 가구점들이 파는 아일랜드 식탁 중 일부는 앞면이 거친 합판으로 되어 있어서 식탁을 부엌 중앙에 위치시키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싱크대의 폭을 주방에 맞게 조절할 수 없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일반적인 국내 대형 가구점에선 우리 주방에 맞는 걸 찾을 수 없는 셈이었다.
그 후 원목가구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들을 알아보았는데, 원목 상판과 아일랜드 식탁 앞부분의 조건은 맞았지만 2순위로 고려할 사항들, 즉 아일랜드 식탁의 접이식 상판과 주방 싱크대의 폭 조절 문제를 만족해 주는 업체를 찾기 어려웠다. 이런 원목가구 업체들도 대부분 완제품을 팔고 있었기에 조건을 딱 맞는 제품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았다. 접이식은 품질이 아쉬웠고, 마음에 드는 제품은 접이식이 아니었다. 이케아에 몇 번 들러 그곳에서 견적까지 받아봤지만 여전히 마음에 드는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이 싱크대 공장에서 전부 주문 제작하는 것이었다. 밑그림부터 시작해야 해서 다소 난감했지만, 내가 원하는 기능과 형태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싱크대를 주방 크기에 맞게 제작할 수 있고 수납 형태와 크기도 하나하나 지정할 수 있으며 다양한 기능도 선택할 수 있으니, 이미 만들어진 제품에서 선택하는 것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그래서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몇 군데 공방에 연락을 넣고, 그중 견적을 자세하고 합당하게 보내준 곳에 의뢰하여 시공했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항상 두 명 정도의 인원이 직접 방문하여 자세한 수치를 잰 뒤 견적을 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의뢰한 시공자는 신기하게도 모든 일을 전부 혼자 처리했다. 견적, 설계, 철거, 시공까지 모두. 이런 경우의 장점은 명확하다. 디자이너가 설계도 하고 제작도 한다고 생각해 보라. 실력만 받쳐 준다면 여러 모로 아주 좋은 조건이다. 다만 한 가지 불안함은 혼자서 다 하려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일이 여러 개 들어왔다거나 작업자가 아프다거나 등) 제작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되어 싱크대 철거 후 몇 번씩이나 시공이 반복적으로 미루어졌고, 그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 넘게 싱크대 없이 생활해야 했다. 시공자 스스로 세웠던 설치일자를 계속 어기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우리는 잔금에서 약간의 할인을 요구했다.
완벽히 만족스러운 제품을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용까지 고려하다보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이번에 주문 제작한 싱크대와 아일랜드 식탁, 그리고 찬장에 불만이 없을 수는 없으나─주문자와 제작자의 생각과 위치가 완벽히 일치할 수 없다는 걸 고려하면─이제 해결할 수 없는 불만사항들을 뒤늦게 나열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인간적인 면을 고려하면 오히려 당면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하기에 (물론 상판에 나 있던, 성인 손바닥 한 뼘보다도 큰 '인위적인' 흠집을 내가 지적하기 전까지 모른 척 했던 것은 무척 안타까운 사건이긴 했지만) 이 공방의 장점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고객이 요구하지 않은 것들도 스스로 고민하여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점이다. 예로,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싱크대와 식탁의 문에 유압 경첩과 유압 수대를 달았다는 것이다. 시공자가 유압 경첩 대신에 일반 경첩을 달고, 수대는 설치하지 않은 채 빼버렸어도 고객 입장에서는 당당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런 세부적 사항을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공자는 스스로 그보다 좋은 경첩을 달아줌으로써 내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소비자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 편의성 정도는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공자의 의무이겠으나, 그 기본적 편의조차 고려하지 않는 채 요구받지 않은 건 생략해버리는 이기적인 사업자들이 많은 현실을 고려해야 했다. 무조건 가장 싼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좀 더 들여서라도 좋은 재료를 선정하는 것이 올바른 음식점의 자세이겠지만, 그런 자세가 기본이 아닌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게 이 사회의 현실이 된지 오래다. 아일랜드 식탁의 접이상판에 적용한 사선 가공도 시공자가 스스로 고민하여 좋은 결과물을 낸 예이다. 결과적으로 제품의 품질엔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할 수 있겠다.
제작 시 아내의 키를 생각해서 싱크대의 높이를 높였고 주방의 짧은 폭을 고려해서 싱크대의 전체 폭과 상판 크기를 조정했다. 상부장은 천장에서 띄워 디자인에 차별을 두었고, 상부장의 유리는 불투명한 것(고방 유리)을 선택하여 상부장 내부 용기들에 의한 예상치 못한 시각적 공격을 차단하고자 했다. 좁은 주방을 생각해 아일랜드 식탁은 접이식 상판으로 하였고, 이때 저가의 아이랜드 식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알루미늄 형태의 접이식 지지용 경첩을 쓰지 말고 다른 형태를 고안해 달라고 했다. 싱크대와 식탁의 수납장은 밥솥과 렌지, 냄비 등이 들어갈 수 있도록 크기를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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