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탈리아 베네치아, 축복의 산 마르코 대성당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6. 4. 9. 16:59

본문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을 보았을 때, 내가 만일 15세기나 16세기의 사람이었다면 이 성당의 웅장한 모습을 보자마자 헉 하며 놀랐을 것이다. 다섯 개의 웅장한 입구부터 시작하여 그 위의 팀파눔과 아키볼트를 따라 지붕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조각된 성스러운 일화들과, 하루의 시작과 끝이 아니면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는 태양을 대신해 같은 자리에서 항상 신성하게 빛나고 있는 황금색 배경의 이콘을 보고는 찬탄하였을 것이 분명했다. 난 내가 15세기의 한 촌에서 출발하여 갓 베네치아에 도착한 사내이기를 상상했다. 거친 논밭과 밋밋한 성벽이 황량하게 둘러쳐 있는 어느 시골의 한 사내가, 이제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유럽의 남쪽 끝으로 내려가다가 막 베네치아에 접어 들었음을 상상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와 같을 수는 없었다. 옛 사람들을 끊임없이 감동시켰을 이 거대하고 영광스러운 건축물은 이제 크기에서는 우리의 근대 궁궐과 현대의 몇몇 유명한 거대 교회보다도 작았고, 그 화려함은 과하고 식상해 보였으며, 심지어 눈속임처럼 느껴졌다. 아 이런 생각으로는 제대로 된 여행이 될리 없지 않은가.

 

오늘날 여행자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는 현대의 감각을 잊는 일이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슴과 머리 한쪽은 비워 둘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역시 제대로 잊지 못했다. 그리하여 어떤 여행자들은 이 성당을 보며 "어렵사리 끌어올려진 돌덩이, 돌덩이를 끌어올리는 인부들, 돌덩이를 위로 움직이는 지렛대, 돌덩이를 떠받치는 쐐기, 이 수도원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것이 있어야 했는지"(주제 사라마구)만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염두에 둬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우리는 건축가와 예술가의 이름은 알되, 피와 땀을 흘리고 때로는 목숨을 잃었을 이름 없는 일꾼들이 거기 있었음은 잘 생각지 못한다. 주춧돌을 나르다 돌에 깔리고 비계에서 추락했을 일꾼들, 채찍질에 피 흘렸을 소떼, 돌을 쐐기와 징으로 때려 내다가 그 과정에서 아무도 몰라줄 미래의 장애를 안아야 했을 많은 석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해 질 무렵까지 노동을 한 후 짚을 쌓아올린 헛간에 옹기종기 모여 몸을 누이곤 그날의 무사함에 안도했으리라. 서로의 체온으로 헛간의 대기를 따뜻하게 채웠으리라. 그들이 만들고 있는 성당의 수호성인, 성 마르코의 축복과 자비가 자신들의 머리 위로 내려오기를 기원하며. 전장에서 빼앗아 온 각종 전리품이 이 성당에 기쁘게 봉헌되고 있을 때, 몇 년만에 집에 무사히 도착해 가족과 함께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을 군인들의 기분도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인부들과 군인들이 기도 드렸을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은 성 마르코이다. 산 마르코 광장, 산 마르코 대성당이라는 이름은 모두 이 성인에게서 유래한다. 828년에 이 성인의 유해를 베네치아로 밀반입했던 두 상인은,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갈리시아 지방의 콤포스텔라에서 발견되었던 성 야고보의 유해에 관한 일화를 미리 들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성 야고보의 유해 발견지가 전쟁이 끊이지 않던 예루살렘을 대신해 유럽인들의 순례 중심지가 되었으며, 곧이어 그 자리에 대형 성당이 설립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훗날 그곳으로 가는 길이 3대 순례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고, 거기에 더해 그 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먼 미래를 내다 보았던 건 아닐까. 성 마르코의 유해를 들여오던 그들이 훗날 베네치아가 콤포스텔라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되길 기원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성 마르코의 유해를 밀반입하던 두 상인에 대한 공상. 이슬람의 지배가 시작된 알렉산드리아에 성 마르코의 유해를 계속 놔두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도 있었겠으나, 상인이라는 그들의 직업을 생각하면 그들이 다른 뜻 또한 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성 마르코의 유해가 묻히게 된 성스러운 땅, 베네치아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처럼 3대 순례지라는 이름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갈리시아의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결코 얻지 못했던 막강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동부에서는 금, 상아, 타조가, 이집트에서는 유리, 도기, 보석이 유입되어 비잔티움과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그 교역의 중심부에 베네치아가 있었으니, 성인의 유해를 밀반입한 상인과 그 무덤 위에 산 마르코 대성당을 쌓아 올린 일꾼들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축복 받았으리라. 그들이 있었기에 과거의 베네치아가 있었고, 그날의 우리가 거기에 있을 수 있었다. 프랑크, 아랍과의 전쟁으로, 내전으로, 건축 중에 일어난 사고로, 그리고 전염병으로 많은 베네치아인들이 죽어갔으나 아드리아 해는 그들의 피를 씼어냈고 사람들은 파괴된 흔적들을 모두 복구했다. 과오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 그럼 이제 베네치아 후손들의 축복이 아닌 성 마르코의 축복이 그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내려지기를 희망하자. 광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가 한쪽 발에 들고 있는 라틴 문구를 읽는 데에 신부의 권능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퍼지는 축복이, 종교를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내려줄 수 있는 희망이 되기를. "Pax Tibi Marce Evangelista Meus. 평화가 나의 복음사가 마르코, 당신과 함께."

 

베네치아의 간이 부두

 

산 마르코 대성당의 지붕부 박공과 종탑

 

성 마르코의 상징인 사자. 사자가 잡고 있는 책에는 "Pax Tibi Marce Evangelista Meus(평화가 나의 복음사가 마르코, 당신과 함께)"라고 쓰여 있다.

 

산 마르코 광장 대각선 너머에 있는, 베네치아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염병이 물러간 것을 기념하여 세워진,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앞에서 (촬영: 김경임)

 

아내와 함께 산 마르코 광장에서. 베네치아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