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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5. 11. 1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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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한 교파인 선종은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었던 무사 계급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일본 무사들은 검술에 자신들만의 종교적 특색을 입히게 되었다. '평상심'이나 '부동심' 같은 말로 대표되는 이 정신은, 승리와 같은 결과나 목표에 매달리지 않고 그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승리하는 것을 추구한다.

 

미야모토 무사시와 야규 무네노리를 지도한 것으로 전해지는 다쿠안 선사는 <부동지신묘록(움직이지 않는 지혜에 관한 신묘한 기록)[각주: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동지(움직이지 않는 지혜)가 없어 상대의 움직임에 매여 놀아나는 것을 경계하라. 상대의 몸과 칼의 움직임에 내 마음이 속아 따라나섬으로써 틈을 보여 베이게 된다. (...) 마음을 두지 말라. 적의 몸이나 칼에 마음을 두면, 그 움직임에 마음을 빼앗긴다. 내 몸이나 칼에 두어도 역시 내 마음을 빼앗긴다. 적을 베야겠다는 데나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데 둔다 해도 역시 그것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고로, 마음은 둘 데가 없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미야모토 무사시는 <오륜서>에서 자신의 병법을 협의의 병법과 광의의 병법으로 나누었는데, 여기서 협의는 검술이며 광의는 도(道)를 가리킨다고 했다. 그는 <오륜서>의 제2권에 다음과 같이 썼다.

 

"병법의 도에 있어서의 마음가짐은 평소의 마음과 같아야 한다. 즉, 평상시에나 전투 때에나 조금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 넓은 시야에서 진실을 식별하고, 너무 긴장하지 말고 조금도 게으르지 않으며, 마음이 치우치지 않도록 한가운데에 두고, 마음을 조용히 움직여 그 흔들림이 한순간도 멎지 않도록, 자유자재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뜻을 두어야 한다."

 

다쿠안 선사의 또 다른 제자인 야규 무네노리 역시 <병법가전서>라는 병법서를 남겨 위와 비슷한 말을 전하고 있다:

 

"검을 휘두를 때 검을 휘두른다는 사실을 의식한다면 그대의 공격은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가 될 것이다. (...) 무슨 일을 하든 평상심에서 무심하게 한다면 만사가 쉽고 부드럽게 풀린다. 그리하여 의식적으로 마음을 채우지 않을 때, 그대는 언제나 성공할 것이다."

 

흔히 검도를 정신수양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일본 검도의 이러한 자세와 연관이 있다. 이것은 점수 획득을 우선시 하는 현대의 스포츠와 대비된다. 도장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 옷가지를 깨끗이 정돈하는 것, 상대와 대련함에 있어 자세와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검술과 도를 하나로 보았던 선검일여(禪劍一如)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무사들이 선불교를 얼마나 온전히 이해하였는지, 선불교의 정신과 검의 목적을 합치시킬 수 있는지, 선검일여가 실은 폭력의 미화에 그치지는 않았는지, 여기에는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다(마음으로 추구하는 것과 실제의 행동에는 거의 항상 큰 차이가 있다). 분명한 것은 정신이 검을 이용한 신체의 자세와 몸가짐으로 표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을 수양하면 할수록 그 정신이 올바른 태도로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조금 힘들다는 이유로 대충 타격하거나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성건성 뛰는 것, 자신의 무술 실력을 믿고 오만함에 빠지는 것은 수양의 부족함을 의미하는 바와 같게 된다.

 

계고 중. 상대와 함께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있음에도 일본 사람들은 이를 '연습'이나 '훈련'이 아니라 '계고'라고 한다. 계고, 즉 "옛일을 자세히 살피어 공부"한다는 것은 검도가 단순히 몸을 써 땀을 흘리는 일이 아님을 말한다. 수도중인 스님의 방에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이미 계고가 시작한 그곳에 조심스럽고 경건하며,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을 지닌 채 들어서게 될 것이다.



  1. 이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일본 서적들의 명칭은 일본 발음이 아니라 널리 퍼져 있는 국내 관행을 따라 한국 한자음으로 표기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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