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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07. 12. 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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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하철 안에 들어선다. 읽을 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던 나는 눈을 둘 곳이 없어 몇몇 전동차 광고와 지하철 선로 설명판을 바라본다. 그러다 옆에 앉아 있던 한 사람에게 우연히 눈이 머문다. 그는 책을 읽고 있었고 그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나는 얼른 그 옆에 앉아 책을 훔쳐본다. 읽어보니 수필집이었고 내용 또한 아름다웠다. 하차해야 할 역이 가까워지자 난 망설임 끝에 묻는다. "이 책 제목이 뭔가요?" 그는 나를 슬며시 바라보더니 책 표지를 보여준다. 피천득,『인연』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 책을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했음에 괜스레 부끄러워진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2. 공연을 보다말고 나와 길을 걷는데 동생에게서 연락이 온다.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한다. 며칠 되었다고 한다. 전화를 끊은 뒤 나는 다시 전화를 건다. "오랜만에 식사 같이 할래? 내일은 어때?"

3. 혜화역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나는 슬픈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인문학 서적이 문 앞가를 채우며 헌 책이 서점 뒷가를 빼곡히 채우던 한 서점에 들어선다. 작은 서점이 시집으로 가득하다. 둘러보던 나는 기록할만한 것들을 손바닥에 적는다. 그러다 문득 한 책에 눈이 간다. 그 책을 보자 동생 생각이 나 망설임 없이 구입한다.

4. 서점에서 나오니 조금씩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저녁 8시. 빵 한 조각과 커피 몇 잔 빼고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나는 서둘러 혜화역 1번 출구로 후배를 부른다.

5. 지하철에 들어선다. 이번엔 내 손에 책이 들려있다.

6. 앙리 베르그송의 글을 읽다 생각한다─선은 자신을 선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선은 선과 악의 구분조차 망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을 선이라고 확신하는 건 위험하다. 법을 선이라고, 또 법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 믿었던 사회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처럼. 그렇기에 자신을 선이라고, 혹은 타인을 악이라고 확신하는 순간 비극성의 굴레가 씌워진다. 그리고 그 비극성은 희극적 웃음의 징벌을 선사한다. 찰리 채플린이 동물들에게 물어 뜯기는 장면에서 우리가 웃는 것은 웃음의 기능이 본질적으로 모욕적이고 억압적이며 시혜적일 수도 있음을 암시하며, 타인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자기 교만에, 자기확신에 빠져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선이라 확신하기에 희극적 웃음으로 타인을 징벌하려한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여긴다.

7. 책을 보는데 한쪽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암으로 죽어가는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현재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수술비가 필요합니다." 나는 책에 다시 눈을 돌리려다 말고 주변 사람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며, 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가 내 옆으로 다가오길 기다렸다.

8. 12월의 밤. 난 오늘도 커피를, 커피에서 전해오는 커피잔의 따스함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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