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인생이라는 것은 길을 걸으며 떠올리게 되는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을 때가 있다. 동경하기는 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상상과 같은 것.
내가 살던 곳은 작은 강을 낀 인적 드문 소도시였다. 젊은들이 떠나버린 조용한 도시였지만 풀밭에서 나는 소소한 향만큼은 은은하게 도시를 지키고 있는 곳이었다. 그때 나는 강가를 걷는 것을 좋아했다. 단순히 그 풍경이 아름다워서였기보다는 그 시간이 하루의 얼마 안되는,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었기에 난 때때로 자전거를 타며 그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때 내가 흔히 하는 상상 중의 하나는 좋아하는 소설을 손에 든 채 걸어가다가 아주 우연히, 그 소설의 작가를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럼 나는 그에게 다가가서 들고 있던 책을 보여주며 말하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전 당신의 팬입니다' 그러면 그 소설가는 남쪽의 항구에서 불어오는 듯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 책에 싸인을 해주고는 묻는 것이다. '어디, 차라도 한 잔 하시겠어요?'
난 그런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의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기도 했다. 혹 내 옆을 지나가더라도 모른 채 지나치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리 사진을 들여다보아도 그런 필연 같은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이 작은 소도시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소설가를 만나는 상상을 왜 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소설가의 강연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내 옆의 사람이 소설가라는 걸 알아차리더라도 난 그냥 지나치거나 잘 해봐야 싸인 신청이나 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비가 쏟아지는 날 그를 마음껏 맞아보고 싶다거나 거의 잊어버렸던 오래 전의 애인을 갑자기 만나고 싶어하는 그런 충동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난 필경 비를 맞으러 나가기보다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면서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테니. 봄은 언제나 젊은이의 환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난 내가 그런 환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환상을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상상한다. 마치 이별을 모르는 사랑을 꿈꾸는 것처럼. 어쩌면 인생이란 길을 걸으며 떠올리게 되는 작은 상상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씨는 그의 책 『도쿄 기담집』에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소설가를 만났다 하더라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은 없을 거예요. (…) 피아니스트라면 피아노를 칠 수 있고, 화가라면 스케치라도 할 수 있고, 마술사라면 간단한 마술이라도 보여줄 수 있겠지만…… 소설가는 전혀 아무것도 할 줄 모르거든요." "그래도 뭔가 예술적인 오라aura같은 걸 감상할 수는 없을까요?" "예술적 오라?" (…) "일반인에게서는 보기 힘든 광채 같은 거 말예요." "매일 아침 수염을 깍을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얼굴을 바라보지만, 그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걸요." 그녀는 상냥하게 웃었다.〉
소설가를 묘사한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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