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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샘터 1998), 피천득 지음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1. 3. 1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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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그는 서화에 능하고 거문고는 도(道)에 가까웠다고 한다." (107쪽)
 
한 권의 책을 읽다보면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피천득의 '인연'에는 시대에 맞지 않아 보이는 글도 있었지만 단 세 문장으로 그것들을 덮고도 남을 만큼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위 글을 쓸 때, 그는 틀림없이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게 하는 마음에 걸리는 표현 하나가 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126쪽) 부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짐작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엄마를 그렇게 그리워했던 사람이라면, 엄마의 사랑을 그렇게 못 있어했던 사람이라면 아내에게서도 마찬가지의 따뜻함을 무척 받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처럼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사람에게서 그런 사랑과 관심을 받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결코 그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랑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그 표정과 그 목소리, 그리고 감촉. 그래서 그보다 못한 사랑에는 만족감보다는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그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쓸쓸하고 외롭게---하지만 청아하게 나이를 먹어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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