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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을유문화사, 2011)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1. 4. 7.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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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스를 타는 곳 앞에는 횟집이 죽 늘어서 있다. 버스를 기다리기 지겨워질 때면 난 그 안의 어류들을 바라보았다. 수입산과 국내산으로 나뉘어진 네모난 어항에는 넙치, 대게, 광어, 전복, 도미 등이 비좁은 공간에 서로 뒤섞여 숨죽이고 있었다. 어느 놈은 이미 죽어서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누군가 회를 주문하면 주인은 죽은 녀석을 먼저 꺼내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어처럼 생긴 한 녀석은 유유히 어항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안의 다른 물고기들은 저 녀석을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참 스트레스를 받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와다 요코의「목욕탕」을 읽는데 문득, 버스 정류장 앞에서 생각하던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

「목욕탕」은 횟집의 수족관에서 먹혀지기를 기다려지는 존재처럼 느껴지는---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나'라는 존재를 비늘이라는 단어와 이미지를 통해 그리고 있었다. 주인공이 몸을 씻는 목욕탕은 물고기가 사는 수족관, 어항과 이미지가 서서히 중첩되었다. 이윽고 죽은 사람이 눕는 관이 되었으며, 마지막엔 '나'와 동일시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감정의 고조는 느껴지지 않았고 시종일관 차분함이 흘렀다. 물고기라는, 나에게는 다소 유약한 이미지로 느껴지는 생명체가 종종 등장하여 글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난 처음에 이 글이 수필인줄 알고 읽었다. 두 번째로 읽을 때야 이 책이 소설인 줄 알았다. 그만큼 '나'에 대한 감정이입이 강한 글이었고, 따라서 '나', 즉 자신과의 대화에 익숙한 독자가 아니라면 읽기가 힘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실적을 계량화하고 역량을 수치화하기 원하는 이 사회에서 이런 책이 인기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지구는 70%가 바다로 채워져 있다. 그 안에 사는 우리는 어쩌면 지구라는 수조 속에 사는 물고기일지도 모르고, 지구라는 목욕탕에서 죽은 세포를 밀어내는 인간일지도 모르며, 어항이라는 관에 누워 예정된 운명을 기다리는 횟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버스 정류장 앞의 물고기들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다와다 요코는 훌륭한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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