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난 수십 년 전의, 잊혀진 줄 알았던 내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내 기억의 시간은 계속해서 세분화되었고 그 기억의 공간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상상력에 비하면 내가 이 책을 딱 한번 완독할 동안 본 내용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 있고, 그런 고로 훗날 내가 다시 이 책을 읽을 때 이 속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표현을 흉내내어 말하자면, 이 소설 책은 이 책을 읽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바뀌고, 실은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아닌 다른 이름의 책이며, 기억 속의 독서이고, 매 순간 결코 존재하지 않는 문장들을 포용하는 슬픈 책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 책에 대해 상세히 '논평'하는 것은 이런 것과 같게 될 것이다.
[ 예전에 한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책은 도시를 은유와 상징의 기법으로 풀어 쓴 것으로서, 현재를 과거의 도시로 재구성하여 현대 사회의 도시 공간을 비판하고 또 반성케하는 책입니다." 그러자 한 학자가 그에 반대하며 말했습니다. "도시는 표면을 나타내는 도구일 뿐, 이 책의 도시가 가리키는 것은 바로 인간 그 자체로, 도시 공간 사이에서 살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그 공간에서 사라져버려 황폐한 도시만이 남아버린 디스토피아의 단면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자 또 다른 학자가 그에 반대하며.... ]
이 책에 대해 위와 같은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바로 이 소설,'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나오는 여러 일화들 중 하나가 되어가는 셈이다.
하지만 누가 쉽사리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논평하고 반박하고 수긍하고 오해하는 과정을 거쳐, 인간사라는 거대한 책의 이해할 수 없는 한 등장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거울 같은 끊임없는 반복---나는 우리의 역설적인 모습을 이 책에서 발견하고, 이 책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또 다른 등장인물들의 역설적인 모습을 그 속에서 발견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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