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의 유명한 일화가 새삼 다르게 다가왔다. 고타미라는 여인에 관한 일화였다. 고타미가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어린 아이를 석가 앞으로 데려와 제발 이 아이를 살려달라며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애원했을 때, 석가는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니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살릴 수 있으니 겨자 씨를 구해오되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에서 구해오라고 일렀다. 그후 고타미는 겨자 씨를 구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서서히 어린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타미에게 사람은 누구나 죽는 법이라고 바로 일렀어도, 당시 격앙되어 있던 그녀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석가는 색다른 대답을 통해 고타미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서서히,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들었다. 과연 지혜란 그런 것이었다. 나였다면 아마 서슴지 않고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는 없으니 받아들이고 그만 진정하세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그런 말이 정당하고 올바르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다가 예의까지 갖춘 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크게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지혜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난 그간 이와 비슷한 문제들에 있어서, 사실과 논리로 무장한 채 '내 말이 옳으니 받아들여라' 하고 말하는 것에서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했다. 때로는 사실과 전혀 다르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으니'라고 말하는 것이 지혜로 이르는 길이었다. 그래서 지혜는 여전히 내게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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