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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과 익숙함 2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4. 6. 2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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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그의 순수해 보이는 생각과 행동이---사실은 그의 본성이 아니라---단순히 익숙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 낸 어리숙함의 결과물이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한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사람은 자신의 예의와 염치를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주변에 익숙해질수록 점차 부끄러움을 잊게 되고, 초면엔 감히 할 생각을 못한 행동들을 갈수록 하게 된다. 때론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곤 하는 그 행동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심해져서, 결국엔 자기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할 어둡고 축축한 기운을 상대방에게 드러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의 첫인상, 혹은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그의 모든 것일 거라는 생각에 젖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난 그의 모습이 그가 지닌 내면에 대한 그대로의 투영이 아님을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 그리고 세상 안팎의 여러 정보를 통해 잘 알고 있지만 곧잘 그 사실을 잊어버리곤 한다. 드러난 모습이 마음에 들수록 더욱더.

그런데 그가 세상 사람들의 눈을 꺼리지 않는 무뢰배이거나 인류사에 남을 성인이 아니라면, 즉 그가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가 자기 자신에게만 혹은 아주 친한 사람들(가족)에게만 보여주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게 옳다. 아주 익숙한 환경에서만 튀어나오는 그 무엇인가를. 결국 우리가 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생각하는 익숙함의 경계 내부로 우리 스스로 들어서야만 한다. 그와 나 사이의 관계의 익숙함을 넘어 그가 처한 환경의 익숙함으로 들어서야만 한다. 고통을 수시로 겪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저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익숙함 덕에 더 큰 고통을 이겨내기도 한다. 반대로 고통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행복한 자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때론 사소한 고통에도 쉽게 절망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향락에 익숙한 사람은 퇴폐적으로 보이지만 때론 그 익숙함 덕에 더 큰 탐닉에 빠지지 않기도 하고, 반대로 향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올바른 모습의 전형으로 보이지만 때론 사소한 쾌락을 발판삼아 주색잡기의 탐닉에 너무나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 이로써 명확해진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실로 알고자 할 때 보아야 하는 것, 혹은 예견해야 하는 것---그것은 익숙함 속에 잠겨 있는, "앞으로 잠겨 있을" 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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