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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판단 1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4. 7. 6.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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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성이 인간의 본질적 특성으로 지정된 이후, 우리는 우리의 판단이 이 이성을 근거로 모두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이성을 '가지고만' 있을 뿐 그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우리는 이성이라고 불리는 붓 하나를 가지고 있는 '자칭' 화가인 셈이다. 어떤 사람은 그 붓으로 멋진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커녕 부러트리고 만다.

이런 부족한 이성 능력을 가지고서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이 세상을 헤쳐나가 보려 한다. 그런데 이 작은 이성의 능력마저 잘 도달하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도덕의 세계다. 우리는 도덕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판단은 그 도덕의 문제가 나와는 상관 없어 보이는 저 멀리 있는 일들에 대한 것들 일 때에 한정된다. 소말리아의 내전 문제, 아프리카의 기아 문제, 남극의 환경 문제. 이렇게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닿아있지 않은 문제에 한해서 우리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 문제들의 자기 나라의 일이 되고, 자기 지역의 일이 되고, 자기 회사의 일이 되고, 자기 아파트의 일이 되고, 자기 가정의 일이 되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의 일이 되면,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과 공감의 문제가 된다.

누군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는 판단을 한다. 아마도 합리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자처하며. 하지만 죄를 지은 그 사람이 전혀 모르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인지, 친한 사람인지, 자기 가족인지에 따라 그 죄에 대한 판단이 쉽게 달라지는 걸 볼 수 있다. "저런 죄를 지은 사람은 강하게 처벌해야 돼"라는 판단이 '아는 사람'에게는 "정상 참작을 해야 되지 않을까"가 되고 '자기 가족'에게는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가 된다.  

우리는 간혹 누군가가 회사, 정치, 연예계의 누군가를 험담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의 도덕적인 면을 지적하면서. 그때 그 험담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바라고 있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결코 이성적 판단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명백히 감성과 공감이다. 그래도 그 험담을 듣는 사람들 중 몇몇은 어쩌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시도할지 모른다. 그러다 그는 그 그룹에서 쫓겨날 수 있고, 그럼에도 자신은 해야 할 말을 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그 험담의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되거나 혹은 자기가 바로 험담의 주체가 될 때에는 감성의 판단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 현대에 와서 감성과 공감은 상대방 이해의 핵심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에게 연관된 일일수록 더욱 감성과 공감에 그 판단을 의존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자기 중심적이란 뜻이 된다. 감성과 공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취향과 경향을 따르며, 유대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 도덕적 판단의 문제가 자기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을수록 주관과 상대적 취향은 더욱더 커져 자기 내부를 향한다. 보편적 적용, 행위와 정의의 규칙을 따라야 마땅할 것 같았던 도덕의 판단은 '나'를 향할수록 이기심을 따른다. 영국의 18세기 철학자 흄은 윤리가 감정과 공감 위에 세워지고 이기주의가 정의의 원초적인 동기라고 생각했으나 한편으로는 도덕적 판단이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피하려고 했다. 그는 왜 그런 결론을 피하려고 했는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보편'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오히려 성인이라 불릴 만한 인물들의 '특이한' 행동들이야 말로 보편이 아닌 인간 초월적인 행위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공동체 안에서의 도덕적 판단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서로의 이해와 친밀함과 이기심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감성과 공감이 상대방 이해의 핵심이 된 현대의 도덕은 이제 상대방의 이기심을 감싸 안으라고 (물론 과거에도 그래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더욱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들어주고 공감하라. 하지만 이들은 결국 주관과 이해에 따라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우리의 도덕적 문제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결코 해결될 수 없게 되었다. 이 충돌은 그저 해소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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