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13. 강화도에서의 첫 아침은 전등사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왜 하필 전등사였을까? 강화도, 하면 전등사라고 했다. 그런데 난 전등사를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등사였다. 이런 간단한 이유로 우리의 발길은 전등사를 향하고 있었다.
약간 경사진 언덕을 걸어 올라 산 중턱의 식당가를 지나니 야트막한 성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삼랑성(정족산성)의 성곽이었다. 전등사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길은 삼랑성의 동문을 지나치도록 되어 있었다. 동문 매표소에서 표를 끊은 뒤 계속 걸으니 곧 전등사 윤장대를 시작으로 사찰 전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윤장대를 볼 수 있는 사찰은 그리 많지 않다. 기억을 되돌려 봐도 박물관을 제외하고 내가 실제 사찰에서 본 것은 전등사의 윤장대가 유일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는지 대나무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윤장대 너머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죽림다원 앞의 잘 꾸며진 터였다. 그곳은 찻집 손님들이 사용하는 식사 공간이자 방문객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과 자기가 목재 조형물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찰은 천천히 쉬어가며 마음의 휴식을 얻는 곳이니 이런 공간이 있어 나쁠 게 없어 보였다.
죽림다원을 지나쳐 조금 더 걸어가니 무설전이 보였다. 이 건물은 기존 사찰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평지 위에 지은 것이 아니라 산지의 경사를 이용해 동굴을 만들 듯 경사면을 파 세운 건물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설립 취지를 읽어 보았다. 옛 신라 가람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우리 정신을 담은 불교 미술의 실천"을 위해 "새롭고도 현대적 감각을 아우른 가람불사를 추구"하였다고 써 있었다. 이곳에 안치된 탱화나 부처상도 서양의 회화 기법을 응용하여 만든 것들이었으니 상당한 파격이었다. 기존 양식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무설전을 지나 위로 올라가니 벚나무 사이로 예스럽게 서 있는 대조루가 보였다. 이 누각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마 단청과 현판이 매우 도드라져 보였다. 이 모습은 주변의 자연 풍광과 잘 어우러져 절로 카메라에 손이 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대조루를 지나니 정면으로 전등사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왔다. 대웅보전의 각 기둥엔 커다란 주련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생각해 보니 전등사의 각 건물 기둥마다 주련이 걸려 있었던 듯하다. 주련을 많이 걸어놓은 것도 전등사의 특색이라 할 만했다. 전등사 대웅보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처마도리 사이마다 나체의 여인상을 목각하여 두었다는 것이다. 이 목상은 어떻게 봐도 여인처럼 보이진 않지만, 전설에 따르면 도편수를 배신하고 떠난 여인의 상이라고 한다. 사찰의 중심인 대웅보전에 도편수 개인 사정이 담겨 있는 나체상을 끼워둘 수 있었다는 게 얼핏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주지 스님과 도편수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을까.
다른 건물들을 더 둘러본 뒤 전등사를 내려왔다. 강화도를 떠나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국립생물자원관을 보곤 잠깐 들르기도 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생각보다 커서 전부 구경하기 위해선 시간을 따로 내야 할 듯했다. 마지막으로 소래포구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으로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
윤장대. 사진처럼 가까지 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상태였다. 스님들이 윤장대를 사용하는 걸 (당연하게도) 국내에서는 본 적이 없다. 티베트에서는 한 번 보았는데, 신도나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윤장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하긴 티베트 불교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마니차이니 거기에선 특별한 일도 아니다.
무설전에서 바라본 사찰 풍경
대웅보전의 처마도리 사이에 있는 여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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