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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난아 지음 (민음사 2013)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3. 12. 9.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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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그 소설을 직접 번역한 역자(이난아)의 시각에서 볼 수 있는 책이자, 역자가 파묵과 했던 인터뷰, 각 소설에 대한 파묵의 짧은 생각 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그러나 소설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보았을 때, 이 책에 나타난 전반적인 평들이 기존에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들의 반복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각 소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다양한 관점에서의 평을 기대했던 독자들에겐 아쉬움으로 남을 책이었다. 이 책에서 소설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기존의 평가를 재생산하기보다는, 저자가 소설의 역자라는 점을 살려 본인의 감상평을 보다 많이 넣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이난아 씨 자신의 코멘트 없이, 기존에 이미 나와있던 오르한 파묵의 소설 및 작가에 대한 평을 모아서 다시 적는 것은 - 이 책을 읽을 대상이 오르한 파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일 거라고 가정할 때 -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게다가 저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각 장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심지어 그런 평가마저 불필요하게 느껴지게끔 만들어버렸다.

또한 저자가 오르한 파묵과 그 작품을 신격화하는 것 같은 부분이 종종 보였고 (저자 스스로도 그에게 "경외를 뛰어 넘는 존경심"(254쪽)을 가지고 있다고 책 여러 부분에서 말하고 있다), 모호한 단어들을 이용한 평범한 수준에서의 평을 작성하여 이 책의 의도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오스만 제국의 몰락과 터키 공화국의 굴곡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걸작"(43쪽), "한 가족을 중심으로 터키의 역사, 문화, 사회, 정치적 변화들을 묘사"(55쪽), "이슬람 입장에서의 정치 현실, 이교도, 서구를 보는 시각에 대하여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136쪽) 등과 같은 대중적인 평 이외에도, 각 언론사의 한 줄 평을 책 한 페이지 가까이에 걸쳐 그대로 적은 부분도 있었다. 이 책이 그 자체로 문학작품이라면 그런 부분을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책이 파묵의 책을 이해하기 위해 쓰였다는 점에서 볼 때 그런 부분은 이 책의 목적을 의아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은 자신들이 출판한 책을 호화로운 수식어로 감싸는 출판사 서평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번역한 소설을 소개하려고 시도했을 때부터 이미 이 책은 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순수 박물관을 소개한 부분에서 저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박물관이 현실에서 지어지게 됐다는 이유로 허구가 실제로 변모했다는 이야기를 책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런 일반적인 평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소설에 나오는 무언가를 실제로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허구가 아닌 실제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내용을 허구라고 보았을 때 그 소설에 나오는 어떤 물체를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만들었을 때 그것은 실제가 되는가? 즉, 구전으로 내려오던 도깨비와 산타클로스를 사람들이 인형으로 만들었을 때, 그 도깨비와 산타클로스는 허구에서 실제로 변모한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실제라고 인정한다면 '그럼 실제란 무엇인가'라는 복잡한 주제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기존에 있던 평을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평이한 접근, 평이한 생각에 머무른다. 그렇기에 이 책이 사고의 확장에 도움이 되었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책은 책 소개에 나온 것처럼 "오르한 파묵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책"이라기보다는 "역자가 만나본 오르한 파묵, 그리고 그의 소설에 대한 간단한 해설" 정도가 될 것이며, 그 정도 눈높이에서 바라볼 때에야 만족할만한 내용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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