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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세계사 2013)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3. 12. 10.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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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논의 자체보다는 사람 관계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때론 위험하게 들린다. 토론 주제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토론 상대방과의 관계와 감정에 중심을 두라는 주장은 결과적으로 부정한 결론을 도출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주장하는 협상법을 이용하여 교통 법규 위반 벌칙금을 내야하는 상황에서도 벌금을 내지 않을 수 있었다는 부분이 그렇다. 이 책을 본 누군가가 경찰관인 당신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협상, 즉 벌칙금을 물지 않기 위해 다양한 수사적 접근을 시도했다고 생각해보자. 경찰관인 당신은 그의 협상에 응해 그를 그냥 보내줄 것인가?

동등한 절차나 기준에 따라 모두에게 똑같은 대우를 해야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다소 편법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하는 예시 중 하나인 '특혜 받기' 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종업원인 A는 VIP를 제외한 모든 고객을 일반 엘리베이터로 안내하는 일을 맡고 있는데, 한 고객이 다가와 종업원 A에게 '일이 힘드시겠어요, 저도 이런 일의 고충을 잘 알지요' 같은 말을 하더니 꼭대기 층으로 바로 가는 VIP 엘리베이터를 이용 가능하느냐고 묻는다. 어쩌면 종업원 A는 그 고객의 위로의 말에 감동받아 그 고객을 VIP 엘리베이터로 안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VIP만을 안내해야하는 규칙을 어겼다는 점에서 그 종업원은 칭찬받을 수 없으며, 의도적으로 규칙을 깨는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고객도 칭찬받기 어렵다.

다시 말해, 이 책에서 말하는 '협상을 위한 인간적인 소통'이란 의도적인 시도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만 하는 것이며, 그에 감응하여 받게되는 친절이나 특혜 역시 합리적이고 허용할만한 규범 내에서 이루어져야한다. 또한 그 친절을 받는 사람은 그 친절이 자신이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그것을 사양할 줄 아는 자세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협상은 이득을 얻는 결과를 내세운다는 점에서(자, 봐요. 인간적인 소통을 시도하니 이런 특혜를 받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인간적인 소통'을 특혜를 얻기 위한 수단쯤으로 전락시켜버리는 오해를 안긴다.

그래도 이 책은 큰 의의를 가진다. 토론 문화가 아직 성숙하지 않다는 평을 듣는 한국에서는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데, 토론이나 협상이 대개 언성을 높이는 말싸움으로 번지는 경향이 짙은 분위기에서는 이 책의 접근이 시사해주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성/여성, 전라도/경상도, 좌파/우파와 같이, 사람들의 속성을 단일한 것으로 묶어 편을 가르곤 하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이 책에서 얻어가야 하는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아무리 옳은 사실을 이야기해도 상대방이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협상이 될리 만무하다. 이 책은 협상 전에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해야 하는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첫 걸음을 - 읽는 이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걸음을 - 떼는 법은 배워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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