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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열린책들, 2006)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3. 10. 1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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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달의 궁전이라는 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난 문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 심지어 자주 아는 척을 하기도 했지만 - 실은 잘은 모르던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폴 오스터란 작가를 이름만 들어보았지 책 한 권 읽어본 적 없었을 때,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책이 바로 달의 궁전이었다. 스쳐지나가듯 보았지만 이 책은 인상이 깊게 남았었다. 달의 궁전이라는 이름이 눈길을 끄는 데가 있기도 하였지만 문학과는 거리가 멀 거라고 생각했던 그가 이 소설책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난 폴 오스터에 대해 얼핏 이름만 들어봤을 때였다. 그때가 벌써 13년 전이지만, 난 아직도 그가 이 책을 읽고 느꼈을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내가 이 책을 있는 내내 나에겐 그런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 대목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대목에서는? 다시는 물어볼 수 없을 걸 알기에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달의 궁전이라는 제목은 감수성을 건드리는 데가 있었다. 달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환상과 아름다움, 궁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화려함. 그러나 한편으로 대중에게 격리된 궁전이란 공간의 단절감이 사뭇 다가왔다. 그래서 난 이 제목에 유독 이끌렸다. 이 책 내용을 대표하는 어떤 분위기와 감정이 이 제목에 실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달의 궁전이라는 단어는 책에서 몇 번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도 어떤 멋진 지역이나 물건의 이름이 아니라 한 중국식 음식점의 이름이었다. 나는 소설 내에서 중국 음식점 이름에 불과한 단어가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선 그것은 달이 주는 그 아름답던 환영을 깨는 역할을 했다. 소설은 인간이 달에 착륙한 사실을 고지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주인공은 그것으로 인해 앞으로 미래가 없을 거라는 기분에 빠졌다. 우리가 달을 잘 몰랐을 오래 전에는, 달을 보며 다양한 상상을 하고 꿈을 꾸었지만 - 어쩌면 달에 궁전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상까지 포함하여 - 이제는 달이 미국의 사막처럼 황량한 끝없는 벌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인류가 달에 도착한 것을 환호했지만 한편으론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죽어버린 땅덩어리라는 걸 더욱 확실히 알게 만들어 준 셈이었다.

난 이 달의 이미지가 에핑이 헤맨 그 사막의 황량함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에핑은 사막에서 자신의 인생을 뒤바꿔 줄 동굴을 발견하였는데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궁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과 사막의 이어진 심상이 궁전과 동굴에서 동일한 이미지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었다. 에핑의 사막, 블레이크록의 사막, 바버가 연구하고 상상하던 사막, 그리고 주인공인 M.S.포그가 가로지른 사막. 이들은 모두 달과 같은 황량함을 띠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에핑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동굴을 발견하고, 블레이크록은 고독한 곳에서 달빛을 받아가며 사는 인디언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그리고, 바버는 인디언과 황무지 연구를, 주인공은 사막을 횡단하며 자신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사막에서 얻고 느끼게 된 그것들이 바로 그 나름의 궁전임은 분명해 보였다.

난 이 책을 읽고 나서 블레이크록의 그림을 찾아보았다. 책 속에서 폴 오스터가 묘사한 풍경과 비교해보기도 하며. 캔버스의 정중앙에서 마치 안개에 가려진 태양처럼 빛나는 달을 보며, 먼지가 휘날리고 크레이터가 가득한 황량함이 아닌 어둠을 은은하게 밝히며 숙연한 장면을 연출하는 그 달이야말로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그 달의 이미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블레이크록이 그린 달 밑에는 인디언들이 달빛을 받으며 서있다. 그 인디언들은 학살당하고 쫒겨난 존재라는 사실이 책 몇 부분에서 언급되는데 이것 역시 달의 궁전을 형상화하는 중요한 심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즉 에핑, 블레이크록, 빅터, 테슬라, 심지어 인디언까지도 - 내가 보기엔 주인공의 여자친구였던 키티 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인물들 - 모두 주류에서 소외당하고 이해받지 못하며 쫒겨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달'까지도. 이러한 감정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 역시 주인공과 같이 중요한 어떤 것이 풀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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