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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우울. 보를레르 지음. 박철화 옮김. 동서문화사 2013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4. 3. 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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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증오나 속세의 사랑과 같은 저속한 열정은 발아래 계속 바닥에 길게 깔린 구름 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내 영혼은 나를 둘러싼 천구처럼 광활하고 순결해 보였다. 지상에서의 모든 기억은 저 멀리 산비탈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풀 뜯는 가축들의 방울 소리처럼 약하고 희미하게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332쪽)

그는 아름다움을 전통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데에도 재능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 아름다운(정신적인) 공간 안에서 서로 악귀처럼(육체의 본능을) 다투는 인간들에게 더 쏠려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 듯하다.

다시 읽고 싶은 부분을 적어두는 나의 버릇 때문에 이 책을 읽는데 몇 배의 시간이 더 걸렸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고, 결국 이 산문시 전체를 카피할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단한 애를 써야 했다. 이부분을 적을까? 아니 이 부분을? 아니 이 전체를 다 적을 순 없지 않은가?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이 산문시에서는 환상적인 표현을 가미한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어쩌면 보르헤스와 같은 사람들도 보들레르에게 영향을 받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렬한 죽음>, <너그러운 도박꾼>, <누구나 키마이라를 업고 있다>, <서툰 유리 장수>, <과부들>, <가난뱅이들을 때려죽이자!>, <이중 방>.... 그런 환상성은 주변의 비참한 거지들과 향락에 젖은 부자들을 대비시키고, 도덕을 추구한다고 간절히 믿는 숭고한 이성과는 아무래도 맞지 않은 모순적 사실들을 노골적으로, 때론 기괴하고 무자비하게 드러낸다.

특히 <이중 방>! 강렬한 회한으로 가득찬 에너지와 현실인식을, 분노로 표현해내는 그의 시를 보라. 하지만 <이중 방>뿐이랴. <서툰 유리 장수>는? <너그러운 도박꾼>은? <늙은 광대>는? 무엇이라 더 쓸 필요가 있을까. 보들레르의 이 작품은 그를 알아보는 자들을 위한 신선한 모체이다.

소설을 읽듯이 그의 글을 읽었다. 즉 그의 산문시를 읽으며 과연 이 시는 어떤 결말로 끝날 것인가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들레르가 쓴 이 수십 편의 시가 하나의 줄거리를 이룬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그가 생각했던 결말은 무엇이었을지가 궁금해졌다. 시의 한 화자는 이렇게 외친다. "주여, 오, 하느님이여! (...) 이 마음을 회개시키기 위해 내 정신에 공포심을 두신 분이여!" (405쪽) 우리 마음에 깃드는 공포심이 회개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부르짓는 이 사람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자극, 상상력, 호기심... 보들레르의 선물은 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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