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소설을 줄곧 관통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단편 소설 내내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 시작부터 이 단편이 끝날 때까지. 소설 마지막에도 그는 어떤 거리를 걸으며 그곳이 그녀와 함께 걸었던 장소라는 걸 떠올린다. 그래서 그 길이 좋고, 그 길을 산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렇게 그녀를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통의 존재는 그녀와 더불어 이 소설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그는 그 고통 때문에 제대로 잠에 들지 못하였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책을 시작했다. 이런 방식으로 이 소설의 핵심 단어인 그녀, 고통, 산책을 모두 등장시킬 수 있다. 그는 고통을 끝내고 싶어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곤충들을 부러워한다.
주인공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책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그 산책을 하며 깨달은 것은 우리 모두 어느 정도 고통을 지니고 있으며, 아무리 고통의 물리적 아픔을 호소해도 듣는 이가 제대로 공감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지만 그 생각에 확신을 갖지는 못 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그녀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던 건 아닌지 고민한다.
결국 그는 산책이란 위험한 것이라 결론 내리게 된다. 산책을 하는 동안 상대방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산책을 하게 되면 누구나 자신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말 것이라는 예견을 한다.
소설 말미에 산책하던 주인공은 시위대의 함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경찰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장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평론가는 그것이 산책의 한계를 의미한다 했고, 어떤 평론가는 시위대의 함성이 고통의 연대를 의미한다 했다. 조금씩 평이 다르긴 했지만 결말에서 희망의 암시를 보았다는 것은 같았다.
2.
그런데 소설 전반에 퍼져 있는 주인공의 태도와 생각을 미루어 볼 때 전경과의 마주침을 갑작스런 생각의 전환으로 파악하는 것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주인공의 진술이 확장되는 것이라 보면 어떨까. 주인공이 산책을 하다 마주쳤던 시위대의 함성은 집단적으로 공유되던 고통이 한꺼번에 표출되는 소리라 할 수 있다. '공유되는 고통'은 고통을 이해 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던 주인공의 생각과는 배치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시위대의 함성을 듣고 나서 그곳에도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만 그것이 어떤 고통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가 시위대의 함성에서 지네와 배짱이, 그리고 수컷 사마귀를 떠올렸던 건 그런 이유라 볼 수 있다. 그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곤충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결정적으로 그는 시위의 요란한 함성과 살수차, 바리케이트와 경찰을 마주하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위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는 산책을 계속 할 거냐는 Y의 물음에 이렇게 답할 뿐이다. "그래요, 이 거리. 제가 좋아하는 거리니까." 그 후 그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와 꼭 붙어서 다니던 거리니까." (32쪽)
살수차까지 동원된 격렬한 시위의 현장을 눈앞에 두고도 그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추억 속의 그녀가 있을 뿐이다. 그는 타인의 고통과 철저히 격리되어 있다. 그의 그런 상태는 그들의 고통 즉, 시위대와 경찰과 말기암 환자와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예측을 낳게 한다.
산책을 하며 그가 깨달은 바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코끼리로 상징되는 어떤 고통을 이해해 달라고 요청하기보다는 Y처럼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는 것만이 그것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Y가 그랬듯 "내 몸은 이제 영영 낫지 않아. 지금 얘기해." 하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1
그러나 그런 강인한 정신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거친 함성과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시위대와 그들의 산책을 막았던 경찰의 등장을 그것을 알린다. 강인한 정신은 결국 저지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ㅡ책의 제목과는 달리ㅡ그들의 산책은 조금도 즐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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