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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임의 영토. 르네 마그리트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4. 12. 2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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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하임의 영토 (oil on canvas, 1938) 르네 마그리트.

 

위 그림은 르네 마그리트가 "안하임의 영토(The domain of Arnheim)"라고 이름 붙인 일련의 작품 중 초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마그리트는 "안하임의 영토"를 여러 번에 걸쳐 그렸는데, 그 그림들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독수리를 형상화한 산등성이와 조류의 알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마그리트는 자신의 그림에 직접 이름을 붙였기에---또한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그의 그림을 작가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그림을 볼 때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그리트의 그림, "안하임의 영토"는 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던 애드거 앨런 포의 단편 소설 "안하임의 영토(하늘연못 출판사의 홍성영 번역가는 "아른하임"으로 번역)와 관련 있는 작품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마그리트 본인이 직접 "애드거 엘런 포가 무척 좋아할 예술가적 상상력을 현실화하였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여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일단 작품의 이름이 서로 같다. 그리고 소설을 읽어보면 그림의 내용이 연상됨을 알 수 있다. 특히 소설 말미 부분에 묘사되는 "화려한 산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거대한 원형극장"과 "마귀와 난쟁이들이 공동으로 힘을 합쳐 만든 환영의 성인듯 보이는, 반은 고딕 양식 반은 사라센 양식의 건축물 덩어리가 공중에 기적처럼 떠 있다"라는 부분에서 이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위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면 원근감을 상세히 나타낸(건물의 벽돌) 어떤 건물이 그림 바깥쪽에 보이는데, 눈 덮인 산의 전경을 보았을 때 이 건물이 하늘 높이 떠있다는 예측을 할 수 밖에 없고, 이것은 "공중에 기적처럼 떠 있다"는 소설의 묘사와 일치한다.

 

그러면 마그리트가 소설을 모티브로 삼아 그려내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여러 방향으로 추측을 해볼 수 있다. 비상해야 할 독수리가 산에 묶여 있는 모습에서 자유나 이상이 갇혀버린 상황을(새와 산이 함께 형상화되는 모습은 1926에 그린 "Wreackage of the Shadow"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림 하단에 배치되어 있는 알의 모습에서 곧 태어날 생명을, 그 생명이 위태롭게 난간에 놓여 있는 모습에서 추락이나 동사의 위험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흰 눈의 배치에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알파벳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해석은 아무래도 소설을 향한다. 소설을 보면 주인공 엘리슨이 자신의 예술론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예술론이 마그리트에게 어떤 감흥을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는 동명의 제목으로 이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멀리서 보았을 때 우리의 무질서가 그쪽에서는 질서로, 우리에게는 그림 같지 않은 것이 마치 그림같이 아름다워 보이겠지. 즉 우리의 감각보다 더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죽음으로 인해 더욱 세련된 미적 감각을 지닌 땅 위의 천사들을 신께서 이 땅 위의 넓은 풍경과 정원 안에 배열했을 것일세. (...) 개인의 수단으로는 달성할 수 없지만 만약 달성되면 단순한 인간적 이해관계만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뛰어넘는 매력을 풍경에 부여할 수 있는, 그런 목표가 존재하지 않을까."

 

소설의 주인공 엘리슨은 자연이 그 스스로 지닌 조화와 질서에 만족하지 않고 그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것은 정원사가 자연에 가하는 '가꿈'이며 그 결과는 무질서처럼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는 그림 같지 않은 것이 마치 그림같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 포의 주인공이 소설에서 발견하고 추구한 풍경을 마그리트는 그림으로 그려낸 셈이다. 주인공 일행이 4년 만에 찾아낸 곳, 산에 가로막혀 시야가 제한된 여기, 안하임의 영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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