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국 철학 콘서트. 홍승기 지음 (민음사 2012)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5. 4. 21. 03:12

본문

본격적인 철학서라고 보기는 어렵다. 각 인물들의 철학 사상에 대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나 깊이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았으며, 적지 않은 지면을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설명하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또 저자가 자신의 주관으로 인물들의 사상을 평가하는 듯한 부분이 종종 등장했는데 그것이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었다: "그런데 정약용의 철학에는 모순이 있었다. (...) 즉 개인의 수양 차원에서는 욕망을 버리라 하면서도 국가적, 사회적 개혁과 관련해서는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는 모순을 드러냈다."(394쪽) 이 예시에서 저자는 정약용이 개인적 차원과 국가적 차원의 욕망을 다르게 구분하고 있으므로 모순이라 지적하는데, 이런 식의 구분은 현대의 사회 및 철학이론에 수시로 등장하는 것으로, 모순으로 보기 어렵다. 개개인에게는 검소하게 살자고 주장하는 동시에, 국가에게는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성장 우선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책임과 권리가 국가의 그것과 반드시 동일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하거나, 아니면 정약용의 철학에 모순이 있다고 비판한 사람이 누구인지, 혹은 어떤 글에서 그런 비판이 언급되었는지를 명확히 서술해야 했다.

 

이 책에는 분명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국내 학자들이 어떤 사상을 펼쳤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본격적인 철학서가 아니고, 인물의 생애와 일화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불교 사상, 성리학, 실학에 관한 이론만 빼곡한 책이었다면 나는 제풀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대신, 책의 반납을 미룬 채 도서관 무인반납기 앞에 서서 책의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도록 만들었으니, 이 정도면 특정 독자층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