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 이건이 쓴 <깡패단의 방문>을 다시 완독했다. 지하철 안에서 몇 주에 걸쳐 읽었다. 이 소설을 읽기 위해 일부러 (자가용이 아닌) 지하철에 탔다. 이것은 똑같은 영화를 두 번 봤다거나 두께 오십 쪽의 시집을 열 번 읽었다거나 똑같은 음악을 수십 번 반복해 들었다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장편 소설을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예전에 한 번 정독했던 것을 다시 정독한다는 건 말이다. 다시 말해 난 이 소설에 꽤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깡패단의 방문>이 전통적 의미의 명작이 되어, 이른바 <세계 문학 전집>에 포함되어 세대를 거쳐 전해지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만일 이 소설이 록 음악과 쇼비지니스 같은 세속적 소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 무게를 조금 더 실었다면 관점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 소설은 미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대중성이 있지만 그런 만큼 전통적 비평에서는 높은 점수를 내기가 쉽지 않다. 작가는 통속적 소재와 전개를 쓰고서도 이 소설을 순수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쉼표'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엔 쉼표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음악 전개에 있어 잠깐 쉬어가는 쉼표를 의미하지만 내재적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내 생각에 이 소설에서 말하는 진짜 쉼표는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들 사이마다 존재하는 시간의 쉼표들이다. 대책 없고, 미래가 없고, 곧 끝장날 것 같은 삶에 쉼표가 들이닥친다. 그리고 그 쉼표가 지나가는 사이 새로운 삶이 열린다. 작가는 그 쉼표가 진행될 동안 각 등장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독자는 그 쉼표를 상상해야 한다. 나에게는 바로 이 상상이 이 소설에 끌리는 힘의 원천이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소설이 끝난 뒤에도 그 상상이 끝나지 않기를, 심지어 자신의 삶에서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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