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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창비, 2013)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5. 8. 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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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동안 단편으로만 만나봤던 김애란 씨의 소설을 장편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단편에서 전개하던 그 재빠른 무거움을 장편에선 어떻게 만들어 낼지 궁금했다. 그래서 고른 책이 이 책이었다. 제목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었고, 제법 인기도 있는 것 같아서 읽어볼 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두근두근 내 인생"의 내용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순수문학인줄 알았는데 대중소설처럼 보였다. 소설의 재미를 위해 무리한 전개를 한 것으로 판단되는 곳도 있었다. 소설 중반부터는 아름과 서하라는 두 인물이 사실상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외의 등장인물들은 (특히 아름의 부모) 소설 초반에 꽤 비중있게 나오지만 중반부터는 형식적으로만 등장하여 이 인물들이 소설의 완성이 아니라 재미를 위해 삽입되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아름과 서하, 이 두 사람이 꿈꾸는 미래 직업은 소설가였는데, 이것도 소설의 전개를 위해 맞춰진 것으로 보였다. 아름과 서하는 꽤 많은 이야기들을 편지로 주고 받았는데, 그 편지에 쓰인 문장의 수준이 글쓰기에 관심이 없다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편지에 쓰인 문장의 수준을 낮춰 현실감을 높이거나, 아니면 편지의 글 수준을 작가의 수준으로 높이되 현실감을 위해서 두 사람 모두 꿈이 작가라고 설정하는 것. 하지만 우연히 만난 이 두 사람의 꿈이 모두 작가라는 것에서 현실성을 찾을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다.

 

이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김애란 소설가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다. 어쩌면 많은 소설가들과 평론가들은 앞으로 소설이 나아가야 할 길(대중과 매체와의 협력)에 김애란 씨가 성공적으로 진입했다며 좋아할 것이다. 정말 쉽고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 맞는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각종 문학상을 탔던 소설가에게 내가 기대했던 전개와 형식은 아니었다.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취할 수 없다면 대중성을 택하자, 아마 작가는 그렇게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김애란 씨의 글 자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거움의 가벼운 전개.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녀의 본능적 방식일 수도 있겠다.

 

 

2.

그러나 지금까지의 이런 판단은 섣부른 것이다. 이 소설의 추는 마지막에 있기 때문이다. 아름이 자신의 부모에게 들려준 마지막 말들, 그리고 자신의 부모를 주인공으로 한 짧은 소설이 이 책을 살아 있게 했다. 이 부분이 없었더라면 서하의 부모는 정말 재미와 분량을 위해 끼워 넣어진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문학성을 완전히 버리고 대중성을 쫒은 소설로 남았을 것이다. 김애란 씨가 말하는 것 같다. "하하, 속았지?" 마치 서하라는 그 인물의 실체처럼 말이다. 이런 마지막 부분이 없었더라면, 주인공이 겪는 신체적 고통에 대해선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이 소설에서 그 고통을 상상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제야 소설책 뒷표지에 쓰여 있는, 소설가 황석영 씨의 '주례사 서평'에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능청스러움이라든가 시치미를 떼는 말짱함으로 보더라도 그녀는 운명적인 이야기꾼이다." 언젠가 이 능청스러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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