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가 블로그를 통해 감성을 팔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주로 쓰던 글은 문학이나 미술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내가 세상을 느끼는 시각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시각이란 다분히 애잔하고 반성적인 부분이 많았다.
누구라고 볼 수 있는 공간에 그런 글을 쓰는 걸 그는 소위 '감성팔이'로 간주했고 그래서 싫어했다. 그의 눈엔 분명한 사실처럼 보였다. 어디 멋진 곳에 가서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일종의 자랑이요, 자신이 어떤 시험에 합격한 걸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랑이었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건 자신의 남다른 감수성을 자랑하는 것이고, 책과 예술에 대해 쓰는 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반성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엔 그런 행동은 모두 자기를 추켜세우려는 부끄러운 짓이었다.
그런 생각이 그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행복을 내보이는 게 일종의 자기과시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은 그가 진실로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행복한 척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흔히 '희망을 가져라!' 하고 말한다. 희망이 없으면 인생이 이미 실패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희망 없이도 세상을 '견디어' 내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비참한가? 어느 부분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잘것없어 보이는 노동자들에게도 그들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어쩌면 충분히 긴 행복이 있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불행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을 희망 없이 산 존재, 게으른 존재로 간주하는 외부의 가혹한 시선 때문이다. 그들은 희망을 강요하면서 한편으로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자랑에 대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밖으로 드러난 행복과 즐거움을 쉽게 죄악이자 허영으로 치부하는 것은 거친 폭력이 될 수 있다. 분명 겉치레에만 치중하여 그걸 자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그렇다고 통틀어 말할 수는 없다. 성급한 일반화는 어느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실제로 허영에 차서 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그 행동을 손가락질 할 윤리적 자격이 우리에게 부여되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자식이나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신의 좋은 점을 남에게 자랑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할 수 있다. 그때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랑에 대한 염려는 자랑 그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교만과 과장이 담기는 걸 우려하기 때문이며, 외부적으로는 타인의 시기심이 불러올 불행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자랑하는 행위 자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 행위를 비판할 윤리적 근거가 설 자리는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물을 것이다. 자랑과 시기심, 어떤 게 더 나쁜가? 정당한 내보임(자랑)인지, 타당한 비판(시기심)인지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랑은 경우에 따라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랑에 대한 제3자의 시선은 대부분 무례할 가능성이 높다.
"겸손한 명사들이란 실제로는 자랑할 게 없는 유명인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항상 들었다. (...) 괴테가 말했다. '사기꾼들이나 겸손하다.'"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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