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쓴 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곤 한다. 미국의 예술평론가이자 수필가인 수전 손택은 그 이유를 사람들이 '수난'에 관심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작가가 쓴 일기를 읽으며 그 작가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그 고통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켰는지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예술가 중에서도 말(씀)의 직업에 종사하는 작가가 고난을 제일 잘 표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작가의 일기에, 수필에 관심을 보인다. 1
손택은 사람들이 수난에 관심이 있는 이유를 기독교적 자기반성이라는 오래된 강박관념에서 찾았다. 기독교적 자기반성은 성서에 나타난 온갖 고난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노예 생활부터 예수의 죽음에 이르는 이 수난의 역사가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라고 믿는 뿌리 깊은 전통을 뜻한다. "자기의 발견이란 곧 고난받는 자기의 발견"인 것이다. 2
기독교는 예수의 고난과 부활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종교다. 예수는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지만 십자가의 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즉, 고난이란 구원에 앞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무엇이다. 따라서 독자는ㅡ성자가 고난을 극복하여 구원을 성취했듯ㅡ작가가 고난을 극복하고 예술을 성취했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독자는 일기라 이름 붙여진 수필에서 작가의 수난과 극복의 역사를 읽고 싶어한다. 수난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통달한 식견, 삶을 성찰하는 진지한 전언이 담겨 있길 바란다.
인기 작가(또는 글을 잘 쓰는 예술가)의 수필이 계속해서 발간되는 이유를 그러한 연장선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가 보냈을 고뇌의 시간들을 수필, 특히 일기라는 비밀스러운ㅡ그래서 더욱 솔직해 보이는ㅡ도구를 통해 읽어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삶이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혹여 작가의 삶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면 구원의 인상이 더욱 커지게 된다. 작가의 삶과 작업이 고통스러워 보일수록 그들의 삶과 작품은 고결성을 띠게 되고 더 나아가 작가 자체가 희생제물로 여겨지게 된다. 이 무가치한 세상에 훌륭한 작품 하나를 남겨주기 위해 작가가 우리를 대신하여 그런 고통을 겪었다는 식이다. 훌륭한 예술가로 인식되는 방법 중 한 가지ㅡ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외부에 얼마나 잘 드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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