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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엔 방패연이라는 게 있었다. 생김새가 방패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얇은 대나뭇살 네 개 중 두 개를 십자 모양으로, 나머지 두 개를 대각선으로 교차시킨 뒤 그 위에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직사각형의 연종이를 바른 것이었다. 방패연 대신 '천원지방'연이라고 불러도 좋을 모양새였다. 전통을 중시하던 때였기에 그때는 대부분 그런 형태였다.

 

방패연에 흥미를 잃어갈 때쯤 가오리연이 등장했다. 가오리연은 댓살 네 개가 필요한 방패연에 비해 두 개면 만들 수 있었고 크기도 더 작았다. 그래서인지 방패연보다 훨씬 더 잘 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도 기다란 꼬리가 휘날리던 가오리연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래서 방패연을 분해하여 얻은 대나무 두쪽으로 가오리연의 살을 만들었다. 연종이는 당시 붓글씨를 취미로 하고 있던 어머니가 몇 묶음씩 가지고 있던 한지를 썼다. 이제 줄만 연결하면 하늘을 나는 가오리를 볼 수 있을 터였다. 난 집에 있던 실을 모조리 꺼내 얼레에 연결하여 연줄로 만들었다. 얼레는 따로 없어 두꺼운 달력을 여러 번 접어 두껍게 만든 뒤 그 위에 줄을 감았다. 얼레가 아니라 실타래라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엉성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최대한 줄을 많이 감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줄의 길이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다 남겨두었던 두꺼운 털실까지 동원했다. 최대한 길게 길게. 난 연을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려 보낼 심산이었다. 줄만 길다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연을 높이 띄운 뒤 어른들에게 외칠 심산이었다.

 

"저기 봐요! 저기 하늘에 점처럼 보이는 게 제가 날리고 있는 연이에요!"

 

연줄을 계속 풀었다. 더 풀어낼 줄이 없을 때까지. 하지만 어느 정도 떠오른 연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올라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왜 더 올라가지 않을까? 저 높은 곳에선 바람이 불지 않는 걸까? 연줄은 내 앞에서 느슨하게 흔들렸고 그러다 서로 엉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번 엉킨 실들은 단단하게 묶이기 시작했고 결국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말았다. 연을 날리기 적당한 길이까지, 그러다 가위로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엉망이 될 때까지.

 

그때 난 얼레가 없던 내 신세를 탓했다. 얼레만 있었어도 바람에 따라 곧바로 줄을 감고 당길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더 높이 띄우는 게 가능했을 텐데! 당시 내 실력으로는 얼레를 만들 수 없었다. 얼레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얼레가 있었어도, 연줄이 충분히 길었어도 연을 어느 한계 이상 띄울 수 없다는 걸 그때의 난 알지 못했다.

 

그 시절, 난 높이 날아오르는 것에 왜 그리 흥분했었을까? 그때의 마음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주말 경주 첨성대 앞 너른 잔디밭에서 연을 날릴 때도 난 연을 높이 띄웠다. 얼레에 풀 수 있는 줄이 없을 때까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연이 더 높은지 경쟁하지 않았다. 더 높이 올려보겠다며 또 다른 연줄을 찾지도 않았다. 

 

난 얼레의 줄을 감았다. 연이 충분히 내려올 때까지. 그리고 아이에게 얼레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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