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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이랄 게 뭐가 있겠어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19. 10. 1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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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내는 앞으로 식빵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꾸 이어지는 실패에 손을 들고 만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빵을 만들 때마다 옆에서 이것저것 묻기를 그치지 않더니 홀로 몇 번 도전해 보기도 했다.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어느 날 또 거실에서 반죽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만드나 싶었다. 한참 뒤 방문을 열고 나가니 빵 덩어리가 보였다. 방문 바로 앞 조리대 위에, 내가 실수라도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는 듯 식빵과 풀먼 식빵과 머핀이 놓여 있었다. 때마침 방으로 쏟아져 들어온 빛은 방문을 지나쳐 렘브란트 조명처럼 식빵을 정확히 비추었다. 이런 조화가 있을까? 균형 잡힌 세 개의 능선, 무너지지 않은 옆면. 멀리서 보아도 발효가 잘 된, 잘 부풀어 오른 식빵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아내가 이 정도로 만들어 낸 건 처음이었다. 제대로 만든 첫 식빵. 아내에겐 자랑할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에, 방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곳에 식빵을 놓아둔 것일 테지. 하지만 아내에게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할 것이다. 그건 우연이라고, 오븐에서 꺼내 바로 그곳에 내려 놓은 것뿐이라고. "자랑이랄 게 뭐가 있겠어." 


볕이 좋은 날이었고 아내는 밖이었다. 아내는 볕이 좋은 날엔 꼭 밖을 걸었다. 어떤 날엔 비가 왔지만 오히려 아내는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를 구경하자며 내 손을 이끌기도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차분한 발걸음으로 바닷가를 걷듯이. 아내는 기껏해야 옷깃을 여밀 뿐이었다. 때론 좋은 볕이 든다. 마치 밖에 있는 것처럼 집 안까지. 그러나 어느 날은 블라인드를 쳐야 한다. 볕이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우연마저 무의미한 것처럼, 자랑할 게 전혀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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